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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절에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 55
지은이: 유혜자
출판사: 한울
문득 내가 외로웠던 순간에 위안을 받았던 소리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시골 외가에 가서였다. 한
낮엔 동네 친구들과 들과 산에서 즐겁게 보냈지만, 해질녘엔 공연히 쓸쓸하고
서러웠다. 넘어가는 햇살이 걸려있던 툇마루에 앉아 옆집 감나무 꼭대기에 남아
있던 감을 올려다보며 흐르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런데 어느 집에선가 들려
오던 서툰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서글픔이 조금씩 달아났었다. 한밤에
듣던 피리소리처럼 청승스럽지 않고, 서양의 목동들이 부는 목가처럼 정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야말로 프로그램의 인상을 좌우하
고 내용을 짐작케 하는 얼굴인데, 그런 목가적인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면서도 긴장감을 줘서 작업이나 공부의 능률을 올려주는 음악, 정
신을 맑고 상쾌하게 해줄 수 있는 악기라면 플루트인데, 차가운 느낌이 앞서지
만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 1922~ ),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1939~ ) 등 명 연주가의 여러 음악을 들어봐도 전문적인
클래식 음악으로 대중적인 시그널 감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 장 남은 제임
스 골웨이의 디스크는 들어보나마나일 것 같았다. 그냥 집어치우려던 나는 곡목
끝부분 14번째에서 뜻밖의 곡목을 발견했다. ‘아일렌드 메들리-이니스프리 호
도’(Irish Medley ‘The Isle of Innisfree’)라니, 이건 나의 애송시인 예이츠의
시 제목인데, 같은 제목의 음악도 있다는 사실이 우선 반가웠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