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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채소를 가꾸며

오작교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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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차가 나올 무렵이면 꾀꼬리가 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꾀꼬리 노래를 들으면서 햇차 맛을 보았다. 반가운 철새 소리를 들으며 햇차를 음미하는 것은 삶의 고마운 운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진달래가 필 무렵에는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는 밤에만 울지 않고 숲이 짙은 곳에서는 한낮에도 운다. 또 찔레꽃이 피어나면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찔레꽃이 한창 필 무렵이면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울기도 하는데 이런 때는 날씨가 몹시 가물다.

이와 같이 꽃과 철새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자연은 우리에게 계절의 기쁨과 그 은밀한 속뜰을 한 자락 열어 보인다.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자연을 허물고 더럽힌다. 그럼에도 이런 땅을 저버리지 않고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철새가 찾아오는 그 신의와 정상을 생각하면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하다.

초파일이 지나서 채소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오이, 고추, 상추, 케일, 치커리 그리고 고구마도 두 두렁 심었다. 고랭지라 냉해를 입은 오이 모종은 다시 사다 심었다. 여름철을 지내기 위해 이런 준비를 하면서 손수 심고 가꾸는 일이 새삼 고맙고 다행하다고 여겨졌다. 이런 일을 거치는 동안 대지의 덕과 은혜에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가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물건도 갖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조주 선사의 대답
“방하착(放下着 : 내던져 버려라. 놓아 버려라)!”
“이미 한 물건도 갖고 있지 않은데 무엇을 놓아 버리라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고 가거라!”

그 학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그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남아 있는 한 겉으로는 버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버린 것이 아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갈 때처럼 안팎으로 거리낌이 없어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들 삶에서 때로는 지녔던 것을 내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 버리지 않고는 묵은 수렁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우리들이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 것인지 저절로 판단이 선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훤히 내다보인다. 값있는 삶이었는지 무가치한 삶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도 하나의 ‘정진’일 수 있다.

오랜만에 차 안에서 전에 듣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난다. 건강을 되찾아 귀에 익은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고 손수 채소를 가꿀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몸이 성했을 때 순간순간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다들 건강하시기를!

 

글 출처 : 법정스님(아름다운 마무리 : 문학의 숲)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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