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는 고요와 거룩함이 있다. 특히 아침나절의 산은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다. 들이마시는 공기에는 숲 향기와 밤새 내린 이슬기가 배어 있다.
이와 같은 신선한 아침을 잘 맞이할 수 있어야 그날 하루의 삶도 알차다. 이 거룩한 시간을 신문이나 방송 등 너절하고 잡스런 바깥 소리로 얼룩지게 한다면 그것은 고요와 거룩함에 대한 모독이다.
새날이 시작되는 이 거룩한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은 달라진다. 만약 새날의 시작을 부질없는 일로 맞이한다면 그날 하루는 잘못 산 날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선한 일로 시작한다면 그의 삶은 그만큼 아름답고 선하게 채워진다.
신선한 아침을 이와 같이 찬탄하고 있는 나 자신은 지난 밤 바른쪽 어깻죽지가 너무 저러ㅣ고 아파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생 ‧ 노 ‧ 병 ‧ 사, 생명의 주기인 그 병고를 치르는 중이다.
석 달쯤 전, 수원지에서 물길을 고치느라고 무거운 돌을 서너 차례 들어 옮겼더니 그 뒤부터 바른쪽 가슴께가 바늘 끝으로 찌르듯 따끔거리고 어깻죽지가 납덩이처럼 무겁고 저렸었다. 담이 들어 그러나 싶어 침을 맞고 지압을 받았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얼마 전 골프를 즐겼던 한 친지로부터 늑골에 금이 가면 그런 증산이 나타나더라는 경험담을 들었다. 그는 골프공을 잘못 쳐 이 대지인 ‘지구공’을 치는 바람에 늑골이 금이 가 한동안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저께 달포 만에 길상사에 나간 걸음에 큰맘 먹고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은 결과 바른쪽 여섯 번째 갈비뼈에 균열이 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치유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다친 부위는 지금 아무는 중에 있다고 했다. 질병의 원인을 사진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얼마쯤 궁금증이 풀렸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알을 만큼 앓으면 죽을병이 아닌 한 나을 때가 있다.
옛사람의 가르침에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교훈이 떠오른다. 내가 몸소 앓아 봄으로써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동병상련, 우리가 어떤 경보를 겪을 때 그것을 단순하게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이웃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질병을 딛고 살아간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꼭 같이 주어진 것이다. 찬란한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우리 모두에게 고루 주어진 것처럼.
어둠이 가시고 새날이 밝아 오는 여명은 신비한 고요로 서서히 대지의 옷을 벗긴다. 이런 시각 대지의 나그네인 우리들 자신도 한 꺼풀씩 묵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그래서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즐거움이 됐건 괴로움이 됐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아침, 내 식탁에는 들꽃이 한 다발 꽃혀 있다. 가을 들녘의 풍요에 못지않은 풍요로운 내 아침이다.
당신은 이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만날 그날이 그날처럼 그렁저렁 맞이하고 있다면 새날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누가 됐건 한 생애는 세상이 빛이 되어야 한다. 하루하루는 그 빛으로 인해 새날을 이룬다.
추석날 아침이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아침입니다.
내리는 비를 바라다 보고 있노라니
왠지 마음이 착잡해지네요.
이 비가 세상의 모든 근심과 고통과 번뇌들을 한꺼번에 싣고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