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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알맞는 땅을

오작교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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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불일암에 다녀왔다. 무덥고 지루하고 짜증스런 이 여름을 혼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길을 떠났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남쪽은 연일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였다. 내려가던 그날도 폭우가 쏟아져 무시로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주행해야 했다. 그 장대비 속을 달리면서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인가’를 두런두런 외웠다.

  다음 날은 오랜만에 맑게 갠 화창한 날씨. 이 여름철 달빛과 별을 본 지가 언제였던가 싶다. 후박나무 아래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설렁거리는 바람결을 타고 모처럼 좋은 좌정의 시간을 가졌었다. 이런 맑고 투명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 천릿길을 달려왔는가 싶었다.

  30여 년 전 이 암자를 지을 때 손수 심어 놓은 나무들의 정정한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한 생각이 차오른다. 후박나무, 태산목, 은행나무, 굴거리와 벽오동 등이 마음껏 허공으로 뻗어 가는 그 기상이 믿음직스럽다. 사람은 늙어 가는 데 나무들은 정정하게 자란다. 사람이 가고 난 뒤에도 이 나무들은 대지 위에 꿋꿋하게 서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 아름이 된 후박나무를 안아 주었다.

  내가 강원도로 거처를 옮겨 간 후 한동안은 이곳에서 중이 된 사람들이 한두 철씩 번갈아 가면서 살았었다.

  시절인연으로 몇 해 전부터 스님들 몇이서 이 도량에 살면서부터 수행도량으로서 그 면복이 새로워졌다. 이번 여름철 암주(庵主)는 어찌나 부지런한지 혼자 지내면서도 도량 안팎을 쓸고 닦아 훈훈한 청정도량을 이루고 있다. 푸르름을 먹고 산다는 스님은 환희심으로 충만해 있다.

  세상살이에 마음이 심란해 절을 찾은 사람들이 맑게 정리된 도량을 보고 마음이 안정돼 내려가면서, 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쪽지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우리들 생활환경은 본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겉을 보면 속을 안다는 말은 이를 가리키고 있다.

  안거가 시작되는 결제날, 홀로 지내는 암주(庵主)에게 이런 사연을 보냈다.
 
<장로게>에서 한 수행자는 이와 같이 읊었습니다. 

홀로 있는 수행자는 범천(梵天)과 같고, 둘이서 함께라면 두 사람의 신(神)과 같으며, 셋이면 마을 집과 같고, 그 이상이면 장바닥이다.
올 여름 범천이 기뻐할 안거 이루기를,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기를, 부디 청청(靑靑)하시오.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안팎으로 밝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밝음이 이웃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만약 수행자가 어둡고 음울하다면 그 어둡고 음울함을 털어 버리는 일을 제1과제로 삼아야 한다. 수행자는 앞뒤가 훤칠하게 툭툭 터져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 티끌이 쌓이지 않는다. 그 맑고 투명함이 이웃에게 그대로 비췬다.

  사람은 이 세상에 올 때 하나의 씨앗을 지니고 온다. 그 씨앗을 제대로 움트게 하려면 자신에게 알맞은 땅(도량)을 만나야 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땅에서 삶을 이루고 있는지 순간순간 물어야 한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주(註)

안거가 시작되는 결제날

안거는 출가한 승려가 일정 기간 동안 외출을 금하고 한곳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거를 맺는 일을 '결제'라 하는데, 여름 안거는 음력 4월 16일, 겨울 안거는 음력 10월 16일에 시작한다. 기간은 석 달, 안거를 마치는 일을 '해제'라 한다.

 

<장로게>

부처의 제자들이 읊은 시를 모은 시집.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부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도 있고, <법구경>이나 <숫타니파타>의 내용과 비슷한 것도 있다. 모두 264명의 비구들이 지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이름까지 확인하기는 어렵고, 한 사람이 만들었지는 또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인도 서정시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2010.04.14 (10:09:39)
[레벨:14]id: 프리마베라
 
 
 

주(註)를 첨가 해주시니 이해가 쉬워 좋습니다..

 
(221.145.234.213)
  
2012.02.29 (09:39:16)
[레벨:9]id: 귀비
 
 
 

더러운 때를 버리지 못하면서

승복을 입으려고 한다면

그는 승복 입을 자격이 없다

절제와 진실이 없기 때문에..

 

절제와 진실" 삿띠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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