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고 8백에서 살다가 6백으로 내려오니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 얼마 만에 듣는 계명성(鷄鳴聲)인가. 홰를 치며 새벽을 알려 주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가히 우렁차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첫닭이 운다. 어떤 때는 5시에 울기도 하는데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고단한 사람들을 위해서 2시간 늦게 깨우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이 새벽마다 잠에서 깨어나라고 알려 주는 이 장닭 우는 소리를 듣고 몇 사람이나 깊은 잠에서 깨어날까? 닭 우는 소리는 자명종 시계 소리에 비해서 신경을 거스르게 하지 않고 훨씬 여유가 있어서 좋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소리와 자연의 소리는 이렇듯 다르다.
나는 요즘 옹달샘으로 물 길으러 거는 일에 재미를 누리고 있다. 개울물을 뜨러 가는 일보다 더 정감이 있다. 가는 길에는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 있어 푹신푹신한 그 감촉이 마치 카펫 위를 걷는 것 같다.
예전 시골에서는 이 솔가리를 갈퀴로 긁어 불쏘시개나 땔감으로 썼다. 장날이면 솔가리를 지게에 한 짐씩 지고 나와 팔기도 했었다. 나는 땔감보다도 눈으로 보고 발로 밟는 그 맛이 더 좋아 그대로 둔다. 나무들이 떨군 그 잎은 그 나무 아래서 삭아 거름이 되어 다시 뿌리도 돌아간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법칙이다. 생과 사의 소식도 바로 이런 데에 있을 것이다.
이 샘에서 물을 길을 때마다 문득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詩)가 연상된다.
산중에 사는 스님
달빛이 너무 좋아
물병 속에 함께
길어 담았네
방에 들어와
뒤미처 생각하고
병을 기울이니
달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네
물을 길으러 갔다가 때마침 우물에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그 달을 함께 길어 담는다. 아마 청명한 가을밤이었을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글을 읽다가 출출한 김에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해서 우물로 물을 길으러 간다. 길어 놓은 물보다 새로 길은 물이라야 차 맛이 새롭다. 차 맛은 곧 물맛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때마침 둥근달이 우물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바가지로 물과 함께 달을 길어 담는다. 하던 일을 마저 하다가 뒤늦게 생각이 나서 길어 온 샘물을 끓이려고 다로의 차관에 물병을 기울이니 함께 길어 온 달은 그새 어디로 새어나가고 없다.
샘물과 달과 차가 어울린 가을밤 산중의 그윽한 풍류이다. 내가 이 옹달샘의 이름을 급월정(汲月井)이라고 한 것도 이런 정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로 지은 귀틀집의 방이 얼마나 크냐고 누가 묻기에 두 평짜리 단칸방이라고 했다. 그 방으로 드나드는 문지방 위에 폭 한 자 너비의 선방이 내가 서서 손을 뻗칠 수 있는 높이로 걸려 있다. 그 위에 몇 권의 책과 옷을 담은 광주리가 놓여 있다. 옛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서의 통에 견준다면 궁궐인 셈이다.
나는 이 새로운 거처에서 더욱 단순해지고, 더욱 진실해지고,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온화해지고, 더욱 친절해지고, 더욱 인정이 깊어지고자 노력할 것이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아무리 경전을 많이 외울지라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 방탕한 사람은
남의 소만 세고 있는 소몰이꾼일 뿐..
참된 수행자의 대열에 들 수 없다
자판위에 올려진 손끝의 느낌을 알 수 있나요?
오늘도 딱 한걸음만.....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