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면 편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가 있다. 어떤 편지는 그 자리에서 펼쳐 보고, 어떤 편지는 집에 가져와 차분히 읽는다. 첩첩산중 외떨어져 사는 나 같은 경우는 휴대전화가 판을 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편지가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받은 편지는 겉봉에 받은 날짜를 표시하고, 답장을 해야 할 편지와 안 해도 그만인 편지를 가려서 놓아둔다. 그런데 내가 늙어 가는 탓인지 마땅히 해야 할 답장도 번번이 거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편지 답장은 편지를 읽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써야지 그대의 감흥이 식으면 이날저날 미루다가 끝내는 답장을 못하고 만다. 외딴 산중에 오래 살다 보면 오고 가는 세상의 인사치레도 성글어지게 마련이다.
최근에 연암 박지원 선생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서간첩을 읽으면서 편지에 대한 내 무성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2백여 년 전 우리 선인들의 살아가던 모습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편지들이다.
연암 선생이 60세 되던 1796년 정월에서 이듬해 8월까지 띄운 것으로 선생의 노년에 쓴 편지들이다.
선생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고을 일을 하는 틈틈이 한가로울 때면 수시로 글을 짓거나 때로는 법첩을 꺼내 놓고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너희들은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 나는 4년 동안 <자치통감 강목>을 골똘히 봤다. 너희들이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어영부영 해를 보내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고 안타깝다. 한창때 이러면 노년에는 어쩌려고 그러느냐.
고추장 작은 단지를 하나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온전히 익지는 않았다.“
손수 담근 고추장을 아이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뭉클하게 전해 온다. 선생은 9년 전인 1787년에 부인 이씨와 사별했다. 51세 때, 그 후 죽을 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관아의 하인이 돌아올 대 기쁜 소식을 갖고 왔더구나. ‘응애 응애’ 우는 소리가 편지지에 가득한 듯 하거늘 이 세상 즐거운 일이 이보다 더 한 게 또 있겠느냐. 육순 노인이 이제부터 손자를 데리고 놀 뿐 달리 무엇을 구하겠느냐. 産婦의 산후 증세가 심하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산후 복통에는 생강나무를 달여 먹어야 한다. 두 번 복용하면 즉시 낫는다. 이는 네가 태어날 때 슨 방법으로 특효가 있으므로 말해 준다.”
전에 고추장과 여러 가지 밑반찬을 보내 주었는데도 아무 말이 없자 무람없다(무례하다, 버릇없다)고 꾸짖는 사연도 있다.
“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 간에 반찬으로 하느냐? 왜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느냐? 무람없다. 무람없어.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 책은 연암 선생의 아들 박종채가 엮은 연암의 전기다. 아버지의 뛰어난 문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강직한 목민관 시절의 일화도 들려준다. 또한 이 책은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평소 연암선생의 글을 좋아하여 여러편을 읽었지만서도
이글을 읽었을때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것은
정말 소탈하고 격의 없었던 선생을 눈앞에서 보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글에서 연암을 뵈옵고 오랜 벗을 만난 듯 반가웠던 일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