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게잇을 꿰매며
도서명 | 아름다운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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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갯잇을 꿰맸다. 여름 동안 베던 죽침이 선득거려 베개를 바꾸기 위해서다. 처서를 고비로 바람결이 달라졌다.
모든 것에는 그 때가 있다.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던 지겹고 무더운 여름도 이제는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한다. 산자락에 마타리가 피고 싸리꽃이 피어나면 마른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해마다 겪는 여름철 더위인데, 방송과 신문마다 몇 년 만의 찜통더위라고 호들갑을 떨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가 질려 더위를 더 탄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계절의 순환이다. 여름이 덥지 않고 춥다면 그것은 이변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는 여름철 더위 덕에 벼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식물은 이 무더운 여름철에 산소를 많이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은 여름철 더위도 우리가 지금 살아 있기 때문에 느낀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더위도 없다. 그러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여름철 더위를 자신의 생애에서 몇 번이다 더 맞이할 수 있을지 한번 행각해보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일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다. 지난 몇 년을 두고 보더라도 기상이변은 갈수록 아주 심각해지고 있다. 전 지구적인 이 같은 현상은 석유와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현대문명의 한계점이다.
경제대국들의 과도한 산업화에 따른 과소비로 인해 지구 환경은 스스로를 조절하며 균형을 유지해 오던 그 능력을 잃어 가고 있다. 이것은 지구 생태계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고 수탈이다. 화석연료는 사람이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한 번 쓰면 그것으로 끝나는 재생 불가능한 지구 자원이다.
현대문명은 언제 고갈될지 모르는 화석연료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석유와 석탄,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폐허로 돌아갈지 모른다. 이와 같이 지속이 보장되지 않는 아주 어약하고 위태로운 문명이다.
원주민들의 씨를 말리고, 이것저것 너무 많이 차지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들쑤시면 살아온 미국민의 생활수준은 현재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차지한 것만큼 결코 행복하지 않다. 자신들이 저지른 업의 파장에 으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이것이 무슨 소식인가? 탐욕과 시기심과 오만과 어리석음이 가져온 그 열매일 것이다.
우리가 지구의 종말을 늦추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들을 닮으려는 그릇된 생활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큰 것을 물리치고 작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없어도 좋을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현재의 필수품을 낱낱이 점검하여 그 수를 줄여 간소화하도록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들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기를 좋아하는 한 친지는 그 흔한 선풍기 하나 두지 않고 몇 자루 부채로 여름을 지낸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삶의 모습이 이렇다.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일은 이렇듯 조그만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쯤 그 집 연못에는 백련이 피어 볼만할 것이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여름 손님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연꽃 만나러 가는 발길을 멈추고 있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