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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오작교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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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아름다운 마무리

    어느 날 길상사에서 보살님 한 분이 나하고 마주치자 불쑥, “스님이 가진 염주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이틀 후 다시 나올 일이 있으니 그때 갖다 드리겠다고 했다. 이틀 후에 염주를 전했다.

    그때 그 일이 며칠을 두고 내 마음을 풋풋하게 했다.

    평소 나는 염주나 단주를 몸에 지니지 않는다. 불단 곁에 두고 예불 끝에 염주를 굴리면 염송을 하거나 침상 머리에 두고 잠들기 전에 잠시 굴리며 무심을 익힐 뿐이다.

    요즘에 와서 느끼는 바인데, 누구로부터 받는 일보다도 누구에겐가 주는 일이 훨씬 더 좋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주는 일보다 받는 일이 훨씬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탐욕이고 인색이다. 그리고 주지 않고 받기만 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빚이고 짐이다.

    세살 살이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도 주고받는다. 따듯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게 전달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덕이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서 자라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것 같다.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대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대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난다.

    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나는 요즘에 이르러 받는 일보다도 주는 일이 더 즐겁다. 이 세상에서 받기만 하고 주지 못했던 그 탐욕과 인색을 훌훌 털어 내고 싶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돌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 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 가기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이것이 출세간의 청백가풍(淸白家風)이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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