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생의 여우
산중에 짐승이 사라져 가고 있다. 노루와 토끼 본 지가 언제인가. 철 따라 찾아오던 철새들도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쯤 찌르레기와 쏙독새, 휘파람새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골짜기에 메아리를 일으킬 텐데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산과 들녘뿐 아니라 산에 사는 사람의 속도 가뭄을 탄다.
8세기 중국에서 최초로 수도생활의 규범을 마련하고 수도원을 세운 백장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시퍼런 규범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그의 주변에는 삶의 교훈이 많다.
백장 스님의 설법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한 노인이 뒷자리에서 법문을 듣다가 대중을 따라 물러갔다. 그런데 어느 날 법문이 다 끝났는데도 그는 물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백장 스님이
“거기 남아 있는 이는 누구인가?”
라고 물었다. 노인은,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오랜 옛날 이 산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수행이 뛰어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하고 묻기에 제가 답하기를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5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큰스님께서 바른 법문으로 이 여유의 몸을 벗게 해 주소서.“
라고 간청했다. 스님은 그때처럼 다시 물으라고 일렀다.
“수행이 뛰어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스님이 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味因果).”
노인은 이 말끝에 크게 깨닫고 스님께 말했다.
“큰스님의 한마디로 저는 여유의 몸을 벗게 됐습니다. 벗은 몸은 이 산 너머에 있으니 원컨대 죽은 스님을 천도하는 법식대로 해 주소서.”
백장 스님은 대중을 맡아 돌보는 유나에게 점심 공양 후에 죽은 스님의 장례식이 있을 거라고 일렀다. 앓는 사람이 없었는데 장례식이라니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공양이 끝나자 큰스님은 대중을 이끌고 뒷산 바위굴로 가 주장자로 죽어 있는 여우를 끌어내어 그 자리에서 화장했다.
그날 밤 백장 스님은 위의를 갖추고 법상에 올라가 낮 동안에 있었던 전후 사정을 대중에게 말씀했다.
이때 큰스님의 맏제자인 황벽 스님이 물었다.
“노인은 그 옛날 묻는 말에 잘못 답하여 5백 생 동안이나 여유의 몸을 받았다는데, 만약 그대 바르게 답했다면 그 노인은 무슨 몸을 받았을까요?”
백장 스님이 말했다.
“이리 나오너라. 그 노인을 위해 일러 주마.”
황벽은 큰스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면서 갑자기 스승의 옆구리를 쥐어박았다.
이때 백장 스님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달마의 수염이 붉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곳에도 붉은 수염의 달마가 있었구나.”
남을 지도하는 사람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5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았다는 이 법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남의 물음에 바르게 답하고 있는가, 잘못 답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註
달마
중국 선종의 창시자. 남인도 항지국의 셋째 왕자로,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을 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치를 개달아 이를 전파하고, 이 선법을 제자 혜가에게 전수하였다.
8세기 중국에서 최초로 수도생활의 규범을 마련하고 수도원을 세운 백장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시퍼런 규범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그의 주변에는 삶의 교훈이 많다.
백장 스님의 설법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한 노인이 뒷자리에서 법문을 듣다가 대중을 따라 물러갔다. 그런데 어느 날 법문이 다 끝났는데도 그는 물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백장 스님이
“거기 남아 있는 이는 누구인가?”
라고 물었다. 노인은,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오랜 옛날 이 산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수행이 뛰어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하고 묻기에 제가 답하기를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5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큰스님께서 바른 법문으로 이 여유의 몸을 벗게 해 주소서.“
라고 간청했다. 스님은 그때처럼 다시 물으라고 일렀다.
“수행이 뛰어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스님이 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味因果).”
노인은 이 말끝에 크게 깨닫고 스님께 말했다.
“큰스님의 한마디로 저는 여유의 몸을 벗게 됐습니다. 벗은 몸은 이 산 너머에 있으니 원컨대 죽은 스님을 천도하는 법식대로 해 주소서.”
백장 스님은 대중을 맡아 돌보는 유나에게 점심 공양 후에 죽은 스님의 장례식이 있을 거라고 일렀다. 앓는 사람이 없었는데 장례식이라니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공양이 끝나자 큰스님은 대중을 이끌고 뒷산 바위굴로 가 주장자로 죽어 있는 여우를 끌어내어 그 자리에서 화장했다.
그날 밤 백장 스님은 위의를 갖추고 법상에 올라가 낮 동안에 있었던 전후 사정을 대중에게 말씀했다.
이때 큰스님의 맏제자인 황벽 스님이 물었다.
“노인은 그 옛날 묻는 말에 잘못 답하여 5백 생 동안이나 여유의 몸을 받았다는데, 만약 그대 바르게 답했다면 그 노인은 무슨 몸을 받았을까요?”
백장 스님이 말했다.
“이리 나오너라. 그 노인을 위해 일러 주마.”
황벽은 큰스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면서 갑자기 스승의 옆구리를 쥐어박았다.
이때 백장 스님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달마의 수염이 붉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곳에도 붉은 수염의 달마가 있었구나.”
남을 지도하는 사람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5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았다는 이 법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남의 물음에 바르게 답하고 있는가, 잘못 답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註
달마
중국 선종의 창시자. 남인도 항지국의 셋째 왕자로,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을 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치를 개달아 이를 전파하고, 이 선법을 제자 혜가에게 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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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가르침은 무척조심스럽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역시 천차만별이라 ...
인연따라 오고가는게 아닌가 생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