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이야기
도서명 | 텅 빈 충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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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김장을 했다. 김장이라고 해봐야 혼자서 먹을 것이니 그리 많지가 않다. 하지만 겨울을 나기 위한 연례행사라 그대로 지나칠 수도 없다. 이 산중에 들어와 어느덧 열네 번째 하는 김장이었다.
요 몇 해 동안 김장철마다 산에 올라와 김장을 담아주던 성현이네 어머니가 올해는 고3짜리 아들의 입시 일로 예년에 비해 좀 늦었다. 큰절 김장과 때를 맞추어 하던 것을 올해는 무 배추를 밭에 놓아둔 채 두 차례나 눈을 맞혔다.
김장거리를 밭에 놓아둔 채 눈이 내리면, 모처럼 내리는 눈인데도 반갑지가 않다. 지난 여름과 가을, 너무 가물어 샘물을 길어다 주면서 애써 가꾼 무 배추가 추위에 어는 모습을 지켜볼 때, 잠결에서도 마음은 노상 밭가에 맴돌면서 편치 않았다. 손바닥만 한 채소밭을 가지고도 이러는데, 거기에 생계를 걸고 있는 농부들의 심경이 어떠할까 능히 짐작이 간다.
처음에는 아무 요량도 없이 무 배추를 가꾼 대로 여러 독 담았었다. 한실과 광천 그리고 순천장에까지 가서 독을 사 날았었다. 겨우내 먹고 봄까지 먹는다고 해야 기껏 두어 독인데, 농사 지어놓은 게 아까워 철없이 많이 담았던 것이다. 그래서 산 넘어 농막에까지 김치를 퍼 날라주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소견머리가 콕 막힌 어리석은 짓이었다.
밭을 한두 두렁씩 줄이다가 올해는 두 두렁 반만 갈았다. 배추 한 두렁 반하고 무 반 두렁, 그리고 갓 반 두렁, 나머지는 도라지를 심고 화목을 옮겨 심었다. 일거리가 훨씬 줄어들었다.
김장을 하기 전까지 산을 찾아온 친지들에게 제멋대로 자란 배추를 쌈을 싸 먹으라고 한두 포기씩 뽑아 주었다. 어차피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고 남으면 치우기 귀찮아, 미리부터 여러 사람의 입에다 ‘김장’을 담아버린 셈이다. 그래서 광주로 서울로 부산으로, 우리 밭의 배추가 실려 나갔다.
우리나라와 같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겨울철 부식으로 김치가 주중을 이룬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요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입맛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특히 커나가는 아이들은 맵고 짠 배추김치나 무우지보다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를 좋아하고 햄버거니 소시지 같은 것을 즐겨 먹는 실정이다.
예전 우리네 식성은 보편적으로 담백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느끼하고 걸쭉한 것을 대체로 좋아하는 것 같다. 일부 성인들도 아이들의 이런 식성에 동화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채소 값이 뛰는 일보다는 고기 값이 뛰는 경우가 많다. 물가당국에서도 채소 값의 오르고 내림보다는 고기 값의 향방에 신경을 쓰고 있다.
먹는 음식에 따라 사람의 체질과 성격은 적잖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육식 편중이기 때문에 알맞게 익은 배추와 무김치의 산뜻한 맛을, 갓김치와 고들빼기의 그 독특한 감칠맛을 알지 못한다.
같은 희멀쑥하고 훤칠한데 조금 어려운 일에 마주치면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나 인내력이 모자란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차분하고 꾸준하게 지속하지를 못한다. 그저 들락날락 좌불안석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펄펄 뛰던 짐승의 고기를 먹었으니 그걸 삭이려면 함께 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극렬하게 시위를 하는 것도, 무 배추의 힘이 아니고 소나 돼지 혹은 닭의 힘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어떤 이념 아래 자신의 희생도 무릅쓰고 돌팔매질을 하고 화염병을 던지면서까지 주장을 펼치는 일인 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때 그 눈빛과 얼굴 모습에는 이념과 주장보다 살기가 번뜩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발길질을 하는 쪽도 사회질서나 치안유지의 차원 이전에 동물적인 잔인성과 적개심이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김치나 깍두기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수입 쇠고기에서 발산되는 힘이 우리 이웃을 불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김장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은 소화기를 거쳐 혈액과 신경 계통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들의 신체적인 동작과 정신적인 사고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김장을 하던 날은 아침부터 눈발이 흩날리고 잔뜩 찌푸린 쌀쌀한 날씨였다. 큰절 일을 거들어주는 아랫마을 고흥댁과 광주의 정옥이가 와서 애를 써주었다. 겨울에 먹을 것과 내년 봄과 여름에 먹을 것을 땅속에 묻힌 독에 따로따로 담았다.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산길에 수북이 쌓여 있는 가랑잎을 어깻죽지가 뻐근하도록 며칠 동안 긁어모아 매어 날랐다. 그대로 놓아두면 낙엽 밟는 소리며 무드 잡는 데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 위에 ㅣ눈이라도 내려 덮이면 아주 미끄러워 넘어지기 십상이다.
이 가랑잎은 정랑 곁에 쌓아두고 내년 가을가지 그때그때 정랑에 넣어준다. 고전적인 재래식 정랑이기 때문에 뒤를 보고 나올 때는 반드시 한줌씩 뿌려 뒷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덮는 것이 예전부터 절에서 하는 습관이다.
그러니 이 가랑잎의 순환을 두고 생각하면 불구부정(不垢不淨), 더러울 것도 깨끗할 것도 없다. 이 가랑잎과 배설물은 밭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곡식과 채소의 거름이 된다. 옛말에 제 똥 3년만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역시 농경사회에서 나온 그럴 듯한 명언이다.
흑은, 대지는 이와 같이 궂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과 어울려 생물을 길러내는 데에 자양의 기능을 한다. 곡식과 채소, 그리고 초식동물을 잡아 그 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흙의 덕에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밟고 다니는 길에 침을 뱉는 것은 어머니인 대지의 얼굴에 대고 뱉는 거나 마찬가지다. 흙을 저버리지 말라. 대지의 은혜에 감사하라.
지난 가을 여기저기 말빚을 갚느라고 집을 비우고 다니다가 돌아오니, 암자 바로 곁에 산불이 나서 새카맣게 타 있었다. 알아보았더니 웬 얼빠진 녀석이 담뱃불을 던져 불이 났다는 것이다. 큰절에서 대중들이 올라와 산불을 끄느라고 애를 썼다고 했다.
바싹 마른 숲속에 담뱃불을 던지다니 그런 녀석이야말로 화마(火魔)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싶었다. 네 시간이나 두고 탔으니 한쪽 골짝에서 산봉우리까지 새카만 잔해가 볼썽사납게 되었다.
이런 때 나는 내가 홀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한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그런 불상사가 생겼으니 타버린 나무들과 무수한 생물들에게 볼 낯이 없다.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이 한 순간에 타버린 것이다.
이래서 나는 산에 와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친(親) 불친(不親)을 가릴 것 없이 아주 실어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그 많은 나무와 숲이 여기저기서 사라져가고 있지 않은가.
한동안 나는 몹시 속이 상해서 심기가 편치 않았다. 지금도 불탄 자취는 쳐다보기가 싫다. 그러나 생각을 돌이켰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함께 살다 보면 그 은혜뿐 아니라 재난도 함께 입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복과 재앙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공존하게 마련이다. 하루에 밝은 낮과 어둔 밤이 있듯이.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은데 한 가지 일이 더 겹쳤다. 불타서 죽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해동하면 그 자리에 편백나무 묘목을 구해다가 조림을 해야 한다. 날씨가 풀리면 아랫마을에 내려가 일꾼을 구해와야겠다.
글출처 : 텅 빈 충만(법정스님 :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