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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서 저승으로

오작교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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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봉 노스님이 지난 5월 31일 입적하셨다. 오래전부터 건강상태는 안 좋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었다. 오래 여든 셋이므로 살 만큼 사셨지만 갑작스런 죽음에 삶의 덧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까지만 ㅎ ㅐ도 마당에서 풀을 뽑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를 치료하기 우해 서울에 올라가 계셨는데, 치료가 끝나는 대로 다시 옛 도량에 돌아와 계시기로 하였는데, 영구차에 실려 시신으로 돌아올 줄이야. 노인의 건강은 정말로 예측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제 오후 염을 하여 입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새삼스레 헤아리게 되었다. 호흡이 멎고 혼이 나가버린 육신이란 한낱 나무토막만도 못하다는 걸 거듭거듭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영결식을 치루고 다비(茶毘 : 화장)를 한 뒤 습골(拾骨)하여 그 뼈마저 가루를 만들어 흩뜨려버리고 나면, 한 생애의 무게가 어떻다는 것을 우리는 또 텅 빈 가슴으로 한 아름 안게 될 것이다.

    사람은 홀로 태어났다가 홀로 죽는다. 다른 일이라면 남에게 대행시킬 수도 있지만, 나고 죽는 일만은 그럴 수가 없다. 오로지 혼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우리는 저마다 자기 몫의 삶에 그만큼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존재의 빛깔과 무게를 혼자서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과 사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선종사(禪宗史)를 들추어 보면 선승들은 살아갈 때에도 저마다 독특한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지만, 이 지상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그 개성에 따라 강한 채취를 남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과 사를 다로 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살 때에는 삶에 철저하여 그 전체를 드러내고, 죽을 때에도 또한 죽음에 철저하여 자기 존재를 통째로 드러낸다. 그러니 사는 일이 곧 죽는 일이고, 죽는 일이 곧 사는 일이다. 영원한 회귀(回歸)의 눈으로 보면 죽음도 또한 삶의 한 과정인 것.

    그들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것은 모든 얽힘에서 벗어나는 자유다. 일상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생과 사의 굴레로부터도 털털 털고 일어서려는 것이다. 예전부터 고승들의 입적(入寂)에는 그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고려의 보조 스님 같은 분은 북을 쳐 대중을 모이게 한 뒤 법상에 올라 설법을 하였다.

    “오늘 산승의 목숨이 여러분의 손아귀에 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맡기니 옆으로 끌든지 거꾸로 세우든지 마음대로 하라.”

    그리고 주장자(拄杖子)로 법상을 세 번 치고 “천 가지 만 가지 것이 모두 여기에 있느니라.” 하고는 그대로 가셨다고 한다.

    [신심명(信心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승찬 대사 같은 분은 제자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껑충 뛰어 문 앞의 버들가지를 쥔 채 그대로 열반에 들기도 한다.

    분양의 선소 스님은 그 자리에 선 채 입적을 했다. 그는 고을의 지방장관으로부터 세 번이나 토대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사절한다. 그러나 끝까지 버틸 수 없음을 알고 마지막에는 승낙을 한다. ‘내가 가기는 가지만 그 길이 다릅니다. 먼저 가도록 하시오.’ 맞으러 온 사신을 보내고 나서 그대로 선 채 입적. 그는 수행자로서 끝까지 자기 분수를 지키고 세속의 권력과 야합하지 않았다. 권력의 실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탁한 시류에 섞이어 시들기보다는 차라리 죽으로써 살 길을 택했던 것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현재 고려대장경으로만 전해지고 있는 선종의 역사서인 [조당집(祖堂集)]에 등은봉 선사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선사는 오대산에 들어가 성지인 금강굴 앞에서 거구로 물구나무를 선 채 입적을 했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굴의 순례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비를 하려고 했지만 그 주검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의 누이동생 한 사람이 출가하여 여승이 되었는데, 자기 오라버니의 유별난 행적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가까이 다가와서 나무랐다.

    “오라버니는 살아서도 세상일에 어깃장만 놓더니 죽은 후에까지 세상 인정에 따르지 않으시렵니까?”

    이렇게 말하고 손으로 밀어 쓰러뜨리니, 그제야 대중이 시신을 옮기어 다비를 할 수 있었고, 탑을 북대의 정상에 세웠다. 그는 평생 동안 다음과 같은 시[偈頌] 한 편을 남겼을 뿐이다.

외줄 거문고를 그대 위해 퉁기노라
송백은 항시 푸르러 추위를 겁내지 않고
금과 돌은 친하지만 그 성질은 전혀 다르다
그대의 판단에 맡기니 한번 시험해 보라.

    임제 선사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보화 스님에 대한 행적은 [조당집] 17권에 실려 있다. 그는 어느 날 어깨에 관을 메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직인사를 한다.

    “나도 이제는 그만 이승에서 떠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동쪽 문밖으로 나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좋지 않으니 내일 남문 밖에서 떠나겠소.”

    그러나 그날도 그는 죽지 않았다. 사흘째는 서문 밖이라고 하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아 따르던 수가 몇 사람 안 되었다. 나흘째 되는 날 북문 밖으로 나오자 이제는 아무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이날에야 스스로 관 뚜껑을 닫고 입적하였다. 뒤늦게 달려온 사람들이 관을 열자 시신은 간 데가 없고, 공중에서 요령소리만 은은히 울려왔다고 한다.

    오늘같이 닳아진 세상에서 상식의 자로는 잴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한결같이 생사의 굴레에서 훨훨 벗어난 자유인의 경지다. 앉거나 눕거나 서거나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 갔다고 해서 그 생애에 어떤 가치가 부여되는 것을 물론 아니다. 그것은 한낱 지엽적인 얘기 같은 것. 살아 잇을 때 그가 어떻게 살면서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가 보다 소중하다. 그래서 어떤 스승은 마지막 유언을 간청한 제자에게, 내가 살아서 지금까지 말한 그것이 곧 내 유언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현재의 우리들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다음 세상으로 새 길을 찾아 떠나는 길목이라고. 여기에서 고별의 사상이 움튼다. 무거운 장례의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향봉 노사가 강원도 명주군 연곡이 백운사에 계실 때 나는 한 해에 두어 차례씩 문안을 드리러 다녀오곤 했었다. 돌아올 때마다 노사는 뜰 가의 등성이에 올라서서 내 자취가 멀리 산자락에 가릴 때까지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다.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83. 7)

글출처 : 물소리 바람소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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