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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와 비례(非禮)

오작교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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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조 혜능 선사의 법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떤 스님이 찾아와 절을 하는데 건성으로 머리만 숙였지 공손한 태도라고는 전혀 없었다. 형식적으로 고개만 꾸벅 했을 뿐, 인사를 드리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겸손과 공경심이란 전혀 없는 뻣뻣한 자세였다.

    우리는 이런 일을 승속(僧俗)을 물을 것 없이 허다히 볼 수 있다. 이런 인사는 받는 쪽에서나 하는 쪽에서 피차 불유쾌하고 덕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예(禮)가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선사는 꾸짖어 말했다.

    “그렇게 머리 숙이기가 싫으면 무엇하러 절을 하느냐. 네 마음속에 필시 무엇이 하나 들어 있는 모양인데, 무엇을 익혀 왔느냐?”

    그 스님은 대답했다.

    “일직부터 법화경을 독송해 왔는데 이미 삼천 독에 이르렀습니다.”

    자신감에 차 있는 자기 과시의 대답을 듣고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설사 일만 독을 하여 경전의 뜻을 통달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면 도리어 허물이 된다는 걸 모르는구나.”

    그러면서 선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절이란 본래 아만(我慢)을 꺾자는 것
어째서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고
‘나’라는 게 있으면 허물이 생기고
제 공덕 잊으면 복이 한량없는 것을.
우리가 주고받는 절을 인간 상호간에 나누는 인격의 교류다. 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예는 공경하는 마음의 발로에서이고, 스승이 제자의 예에 마주 응하는 것도 그 공경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예절의 하나다. 친구기리 나누는 예도 서로의 신뢰를 드러내는 인간의 품위 있고 아름다운 행위이다. 그러니 예절은 결코 일방적인 동작이 아니고 상호간에 주고받는 인격적인 신뢰의 표시이고 교류인 것.

    그런데 그 예가 어느 일방적인 것이거나 지나치게 번다하다면 그 또한 예절의 법도에서 어긋난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일로 신도가 스님한테 큰절을 하는데 스님은 본체만체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손톱이나 발톱을 깎다가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할지라도 그에 대한 답례가 없다면 그것은 인격의 교류도, 인간적인 품위도 아니다. 아무리 ‘큰스님’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겸허해야 할 수행자의 도리가 아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큰스님이 신도의 절에 답례를 하면 그 신도가 복을 감하게 된다고. 이런 엉뚱한 말이 부처님의 설법 어느 대목에 나와 있는지 필자로는 아직 보거나 듣지 못했다. 설사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특수한 상황 아래 있었던 예외적인 일이지 보편적인 경우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신도의 감복만 생각했지 승려들 자신의 감복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적어도 오늘날 이 나라의 승가가 일반국민에게 귀의(歸依)의 대상이 될 만큼 복전(福田)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란 너무 번다하면 도리어 결례가 된다. 똑같은 동작으로 삼배(三拜)를 드리는 예는 종교적인 의식 말고는 산 사람에게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불전에서 삼배를 하는 것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에서인데, 어째서 승(僧)한테 세 번씩이나 똑같은 동작으로 절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으로는 공경하는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어서란 말인가? 이건 번다할 뿐 아니라 너무나 형식적인 비례(非禮)의 동작이다.

    또 삼배의 예를 받았으면 삼배로써 답례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예절인데 우리는 그런 답례를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극성스런 신도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스님한테 절을 하는데,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 다 같이 정상이 아니다.

    이런 행위가 불교의 본질적인 요소도 아닌데 이 같은 비례(非禮)로 인하여 오늘날 이 땅의 불교는 일반에게 접근하기 어렵고 대로는 거부반응조차 일으키고 있다. 남의 절을 받고도 답례할 줄 모르는 것은 마치 법화경을 잘못 읽어 교만해진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일이다.
(83. 7)
글출처 : 물소리 바람소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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