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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

오작교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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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일기일회(一期一會) 법정스님 법문집
겨울이 아니라 해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한파로 모두의 마음이 움츠러든 이날,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을 맞아 스님은 옛 선사의 말을 빌려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고 했다. 그것이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비결이라고. 90일 동안의 이 안거(安居) 기간에 수행자들은 산문 출입을 끊고 오롯이 자기 존재와 마주해야 한다. 강원도 오두막 생활 17년째인 스님은 이해 겨울을 남쪽 지방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나기로 했다. 힘든 투병 생활 끝이라 잠시 산중을 떠나 있어야 했고, 또한 ‘묵은 곳을 털고 새로워지기 위함’이었다. 법회 다음 날에는 스님의 새로운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가 문학의숲 출판사에서 나왔으며, <산에는 꽃이 피네>가 12월 초 중국이 21세기 출판사와 대만의 탄쉬 출판사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여기 성북동은 아직 가을이 한창이지만, 제가 사는 강원도 쪽엔 이미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북쪽 산골짜기에서는 눈이 내리고, 개울에는 벌써 얼음이 얼었습니다. 같은 땅인데도 이렇듯 계절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겨울에 그 추운 강원도에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걱정의 말들을 합니다. 전에는 긴장감이 있어서 추위가 견딜 만했는데, 지금은 늙은 탓인지 추위가 약간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추울 때는 추워야 하고, 더울 때는 더워야 합니다. 겨울에 춥지 않고 덥다면 이상한 일입니다. 또 한여름에 덥지 않고 춥다면 그 역시 이변입니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합니다.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계절 변화 속에서 식물과 동물이 자라고, 곡식과 과일이 열매 맺습니다. 겨울에는 어느 정도 추위가 있어야 생태계가 온전하게 보전됩니다. 겨울이 춥지 않고 더우면 생활비는 덜 들지 모르지만, 이상난동으로 인해 생태계에는 큰 이변이 찾아옵니다.

    <벽암록>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습니다.

    그때는 날이 무척 더웠던 모양입니다. 한 수행자가 동산 선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몹시 춥거나 더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리의 세계에 대해 묻고 있지만, 거창한 물음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무더울 때면 대개 피서를 가지 않습니까? 또 추울 때는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날씨가 몹시 더운 날 한 수행자가 절의 큰스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답이 행해진 시대는 당나라 때이니까 벌써 1,1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입니다. 어떻게 해야 더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동산 선사가 말합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그러자 제자가 다시 묻습니다.

    “어느 곳이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선사의 답입니다.

    “추울 때는 그대 자신이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그대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

    이것이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입니다. 더위를 피하려면 나 자신이 직접 더위가 되라는 것입니다. 추위를 피하려면 옷만 껴입고 불만 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추위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위도 추위도 미치지 않는다는 소식입니다.

    추위니 더위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분별입니다. 삼복더위 속에서도 일에 열중하면 더위를 모릅니다. 겨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에 열중하면 추위를 잊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불일암에 살 때의 일입니다. 몹시 더운 어느 여름날,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의 바람으로 부엌에 앉아 똑딱거리며 가구를 하나 만든 적이 있습니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그 일에 열중하느라 전혀 더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하게 일기예보에나 관심 갖는 사람들이 더위와 추위에 약합니다.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위도 추위도 없습니다. 쇠가 녹아 끓는 용광로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제철소에서는 그런 일을 합니다. 구분들ㄹ에게는 감히 더위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곧 더위가 되었기에 또 다른 더위가 덮칠 수 없는 것입니다.

    추위와 더위는 상대적인 비교에 따른, 분별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올여름 중 가장 무더운 날이다, 올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다 하고 떠드니까 순진한 사람들이 그 말에 넘어가서 자기 의지대로 살지 않고 외부의 정보에 의해 춥고 더운 것을 미리 가불해서 쓰는 것입니다. 그런 비교에서 벗어나면 추위나 더위에 그다지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더위를 피하려면 자신이 곧 더위가 되라는 가르침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나고 죽는 일, 괴롭고 즐거운 일, 얻고 잃는 일,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 또는 가난과 부 등도 모두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그것들에는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습니다. 상대적인 비교를 통한 분별일 뿐입니다.

    여름철, 사람들은 동해안이나 다른 휴양지에는 더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피서를 떠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곳대로 더위가 있기 마련입니다. 추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그 자체가 되면 불행과 행복의 분별이 사라집니다. 삶 자체가 되어 살ㄹ아가는 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입니다. 번뇌 밖에 따로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와 보리(菩提 - 불교의 최고의 이상인 궁극의 깨달음)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경전의 말씀이 있듯이, 그 둘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관계입니다. 거죽은 번뇌이지만 속은 깨달음입니다. 일상의 삶을 떠나서 따로 열반(涅槃 -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진리를 체득한 경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산 선사의 말은, 이 세상 밖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고 우리는 흔히 믿고 있지만 바로 이 현실 세계에서 천국을 이룰 수 있지 현실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그 분별을 없애기 위해서 제자에게 추위를 피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이 추위가 되라, 너 자신이 더위가 되라고 설파한 것입니다. 불행과 행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삶 그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고.

    온 세상이 하나같이 불황과 경제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 위기를 시작으로 지구 전체가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불안함 속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거서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신문 방송에서 경제가 어렵다, 은행에 돈이 없다, 신용이 낮게 평가된다고 보도하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들 자신도 속으로 기가 죽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습니다.

    만약 미국을 비롯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경제 불황 없이 한결같이 고도성장으로만 치닫는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매우 끔찍한 일입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보다 훨씬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지도자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그저 많이 갖고, 많이 차지하고, 많이 쓰고, 많이 내다 버리는 틀에 갇혀서 그 밖의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인류는 그들이 누리는 경제적인 부만큼 행복한가? 스스로 물음을 던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2, 30년 전 연탄 때고 쌀 한두 되 사다 먹던 시절과,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살 만큼 살면서 저마다 차를 몰고 다니는 지금을 비교해 보십시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우리 내면은 그때보다 훨씬 빈곤해졌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꺼립니다. 만약 모든 나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원하는 대로 고도성장을 구가한다면 지구환경은 현재보다 더욱 황폐해질 것입니다.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집니다. 자살률도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진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물질적인 부만이 최우선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가치는 2, 30년 전에 비해 형편없이 전락했고, 모든 존재가 도구화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순물이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나 부 같은, 없어도 좋을 불필요한 관념들이 인간 사이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서로 믿지 못하고 꺼리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물결치며 흐릅니다. 이것이 우주의 리듬이고 실상입니다. 경제적인 불황도 인간들이 스스로 조절할 줄 모르니까, 우주의 리듬과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렇게 되도록 율동했기에 발생한 것입니다. 우주가 균형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얻고 잃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얻었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해서 기죽을 것도 없습니다. 다 한때입니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참기 어려웠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그때 그곳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일도 세월이 지나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IMF 위기 때도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까닭이 있어서 그런 시련이 우리 앞에 온 것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모르면 끝없이 흔들리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안다면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온 세계의 경제 위기가 왜 찾아왔는지 그 의미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욕망은 끝이 없고 자제를 모르기에, 어떤 보이지 않는 우주의 소리와 질서에 의해서 이렇게 바로잡아지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것이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 넘치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절제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옛 스승의 가르침인 <보왕삼매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살이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오만한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이 이르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신 것이다.
이는 순경계(順境界 - 즐겁고 행복한 일)가 아닌 역경계(逆境界 - 괴롭고 슬픈 일) 속에 삶의 깊은 의미가 실려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부와 물질이 넘치면 인간이 오만해지고 사치스러워집니다. 부시 정권 초기에 전 세계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부시 정권 자체가 오만한 정권입니다. 핵무기도 없고 화학무기도 없는데 그것을 빙자해서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십시오. 현지 사람들도 많이 희생당했고, 미국 젊은이들도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오만함이 인류 사회에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오늘과 같은 미국 사회의 금융 위기도 시발점은 그러한 데 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들에 국민의 돈을 탕진하기 때문에 어떤 우주의 리듬과 손이 건방지게 굴지 말라고 바로잡고 있는 현상이 오늘과 같은 경제 불황입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이 추위가 되라고 하는 가르침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추위와 더위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그것도 한때입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드러내 놓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감사히 받아들일 뿐이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또 불행할 때는 불행을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내 몫이고 내 차지입니다.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겪고 있는 행복이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행복과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으라고 수많은 영적 스승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자기 삶을 늘 주시하라는 뜻입니다. 자기 삶을 주시하고 있으면 고통과 불행이 짜라오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극락도 아니고 지옥도 아닙니다. 참고 견뎌 나가야 하는 사바세계입니다. 거기에 삶의 묘미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흘러간다면 좋은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을 모르게 되고, 삶에서 영적인 깊이가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한때이며, 내가 불러들인 삶의 매듭입니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현상이든 객관적으로 주시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매몰되거나 빠져들지 말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동안거 수행을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수행의 첫 번째 과제는 자기가 하는 일을 늘 살피는 것입니다. ‘이 무엇인가?’의 참구가 바로 그 의미입니다. 참선과 염불, 간경(看經 - 독경, 경전을 읽는 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주시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살피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고통에 짓눌리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힘과 지혜가 그 안에서 싹틉니다. 자기 자신을 주시하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뜻있는 겨울안거가 되도록 우리 함께 정진합시다.
 
2008. 11. 12. 겨울안거 결제
글출처 : 一期一會(법정스님 법문집)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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