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밖에서 살다
도서명 | 오두막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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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별고 없는가. 더위에 지치지나 않았는가. 더위를 원망하지 말라. 무더운 여름이 있기 때문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그 가을바람 속에서 이삭이 여물고 과일에 단맛이 든다.
이런 계절의 순환이 없다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제대로 삶을 누릴 수 없다. 그러니 날씨가 무덥다고 해서 짜증낼 일이 아니다. 한반도와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는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복이라 할 수 있다.
7월 한 달을 나는 바깥출입 없이 이 산중에만 눌러 앉아 지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 되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서 새롭게 살아보고자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집회의 약속을 이행 못하게 된 연유로 해서 모처럼 틀에서 벗어난 생활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건전지가 다 소모되어 시계도 멎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바로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람이 시계를 발명한 이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여 사회생활에 여러 가지로 보탬이 된 것은 지난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시계에 의존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야 하는 폐단도 있다.
먹고 싶지 않아도 식사시간이 되었으니 먹게 되고, 잠이 오지 않는데도 잘 시간이 되었으니 잠자리에 들게 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우리들은 시곗바늘에 조종당하면서 삶을 이루고 있다.
시계가 멎고 시간을 알리는 라디오의 기능이 쉬게 되자, 나는 비로소 시간 밖에서 살 수 있었다. 배가 고파야만 끼니를 챙기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온 후에라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시곗바늘이 지시하는 시간 말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먹고 자고 움직이니 마음이 아주 넉넉하고 태평해졌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나는 비로소 자주적인 삶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부질없이 살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시계에 대한 내 최초의 경험을 불안이었다. 어린 시절, 고모네 집에 나는 자주 놀러갔었다. 고모가 잘해주어 몹시 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빈 바에서 혼자 놀다보면 벽시계의 ‘똑딱똑딱’ 하는 시계추 소리가 몹시 불안하게 들려오곤 했다. 맛있는 음식을 놓아둔 채 나는 말도 없이 슬그머니 고모네 집을 빠져나와야 했다. 아이가 없어진 것을 보고 고모는 걱정이 되어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갔다.
요즘은 하나뿐이지만, 불일암에서 살 때만 해도 방마다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말하자면 시간의 노예 노릇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째깍째깍” 소리가 나는 시계는 산 아래로 내려 보냈다. 손님으로 가서 객실에 들어 묵을 때도 벽시계가 됐건 탁상시계가 됐건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시계추를 멎게 하거나 건전지를 빼 두는 것이 나그네의 습관처럼 되었다. 물론 객실에서 나올 때는 원래대로 살려 놓고 나온다.
손목에 수갑처럼 차는 것이 싫어서 손목시계를 한사코 멀리해 오다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부터 외출할 때만 할 수 없이 차게 됐다. 그러니 시간의 노예임을 스스로 표시하고 다니는 꼴이다.
내가 송광사에서 수련회를 주관할 때는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시계를 풀어서 보관하도록 했다. 모처럼 시한부 출가생활을 하는 수련생들에게 시계의 굴레와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나도록 하고자 해서였다.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가. 아직도 몇 분이 남았다고 하면서, 또는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일 없이 아까운 시간을 쏟아 버린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살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쓸 줄을 안 것이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팔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알차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 밖에서 살 수 있다.
요즘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우리들 자신도 시간 앞에 점점 냉혹해져 가고 야박하게 전락되어 간다. 한참 일을 하다가도 시간이 다됐다고 일손을 놓아 버리기가 일쑤다. 묻힌 김에 조금만 더 일을 하면 깨끗이 끝낼 일도 시계를 보고 일손을 중단하고 만다. 이건 시계의 노예로 익힌 나쁜 근성이다. 시곗바늘이 미치지 않는 일터에서 인간의 덕이 두터워진다는 노동의 비밀도 터득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죽는 일도 그 시간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시계바늘에 의존하지 않으면, 순간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시간 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돌리면 그 어떤 시간에건 여유를 지니고 의젓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세상살이에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노인은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급히 서두르지 말고 좀더 기다리라고 일러 준다. 한 고비가 지나면 좋은 일이 됐건 언짢은 일이 됐건 안팎의 사정이 달라지는 수가 많다. 노인들은 풍진 세상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시간의 비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시간을 가끔 해결해 주는 수가 있다. 그래서 참는 것이 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우선 하룻밤 푹 자고 나서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조급히 해결해 버리려고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시간 밖에서 우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이런 계절의 순환이 없다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제대로 삶을 누릴 수 없다. 그러니 날씨가 무덥다고 해서 짜증낼 일이 아니다. 한반도와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는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복이라 할 수 있다.
7월 한 달을 나는 바깥출입 없이 이 산중에만 눌러 앉아 지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 되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서 새롭게 살아보고자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집회의 약속을 이행 못하게 된 연유로 해서 모처럼 틀에서 벗어난 생활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건전지가 다 소모되어 시계도 멎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바로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람이 시계를 발명한 이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여 사회생활에 여러 가지로 보탬이 된 것은 지난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시계에 의존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야 하는 폐단도 있다.
먹고 싶지 않아도 식사시간이 되었으니 먹게 되고, 잠이 오지 않는데도 잘 시간이 되었으니 잠자리에 들게 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우리들은 시곗바늘에 조종당하면서 삶을 이루고 있다.
시계가 멎고 시간을 알리는 라디오의 기능이 쉬게 되자, 나는 비로소 시간 밖에서 살 수 있었다. 배가 고파야만 끼니를 챙기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온 후에라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시곗바늘이 지시하는 시간 말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먹고 자고 움직이니 마음이 아주 넉넉하고 태평해졌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나는 비로소 자주적인 삶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부질없이 살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시계에 대한 내 최초의 경험을 불안이었다. 어린 시절, 고모네 집에 나는 자주 놀러갔었다. 고모가 잘해주어 몹시 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빈 바에서 혼자 놀다보면 벽시계의 ‘똑딱똑딱’ 하는 시계추 소리가 몹시 불안하게 들려오곤 했다. 맛있는 음식을 놓아둔 채 나는 말도 없이 슬그머니 고모네 집을 빠져나와야 했다. 아이가 없어진 것을 보고 고모는 걱정이 되어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갔다.
요즘은 하나뿐이지만, 불일암에서 살 때만 해도 방마다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말하자면 시간의 노예 노릇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째깍째깍” 소리가 나는 시계는 산 아래로 내려 보냈다. 손님으로 가서 객실에 들어 묵을 때도 벽시계가 됐건 탁상시계가 됐건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시계추를 멎게 하거나 건전지를 빼 두는 것이 나그네의 습관처럼 되었다. 물론 객실에서 나올 때는 원래대로 살려 놓고 나온다.
손목에 수갑처럼 차는 것이 싫어서 손목시계를 한사코 멀리해 오다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부터 외출할 때만 할 수 없이 차게 됐다. 그러니 시간의 노예임을 스스로 표시하고 다니는 꼴이다.
내가 송광사에서 수련회를 주관할 때는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시계를 풀어서 보관하도록 했다. 모처럼 시한부 출가생활을 하는 수련생들에게 시계의 굴레와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나도록 하고자 해서였다.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가. 아직도 몇 분이 남았다고 하면서, 또는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일 없이 아까운 시간을 쏟아 버린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살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쓸 줄을 안 것이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팔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알차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 밖에서 살 수 있다.
요즘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우리들 자신도 시간 앞에 점점 냉혹해져 가고 야박하게 전락되어 간다. 한참 일을 하다가도 시간이 다됐다고 일손을 놓아 버리기가 일쑤다. 묻힌 김에 조금만 더 일을 하면 깨끗이 끝낼 일도 시계를 보고 일손을 중단하고 만다. 이건 시계의 노예로 익힌 나쁜 근성이다. 시곗바늘이 미치지 않는 일터에서 인간의 덕이 두터워진다는 노동의 비밀도 터득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죽는 일도 그 시간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시계바늘에 의존하지 않으면, 순간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시간 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돌리면 그 어떤 시간에건 여유를 지니고 의젓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세상살이에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노인은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급히 서두르지 말고 좀더 기다리라고 일러 준다. 한 고비가 지나면 좋은 일이 됐건 언짢은 일이 됐건 안팎의 사정이 달라지는 수가 많다. 노인들은 풍진 세상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시간의 비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시간을 가끔 해결해 주는 수가 있다. 그래서 참는 것이 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우선 하룻밤 푹 자고 나서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조급히 해결해 버리려고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시간 밖에서 우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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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전 핸드폰이 나오기전 삐삐라는 것이 있던시절
이런저런 일로 많이도 바쁘신
띠동갑이신 선배님 께서는
삐삐는 人間足鎖라 시며
완강히 거부 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가끔 아이한테 나가 있는 동안은 참 자유로움을 느끼지요.
핸드폰 없지요
신문 없지요.
그두가지가 없는데도 무한한 자유를 만끽 합니다 ㅎ
시간 밖에서 만날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