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차 맛이 새롭다
도서명 | 오두막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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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가을 기운에 밀려갔다. 요즘 산중의 가을 날씨는 ‘이밖에 무엇을 더 구하랴’싶게 산뜻하고 쾌적하다. 가을 날씨는 자꾸만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
산자락에는 들꽃이 한창이다. 노란 좁쌀알 같은 꽃을 달고 하늘거리던 마타리가 한 고비 지나자, 개울가 습한 곳에는 용담이 보랏빛 꽃망울을 잔뜩 머금고 있다. 밭머리에 무리지어 핀 구절초와 야생 당귀꽃도 가을꽃 중에서는 볼 만하다. 개울가에서 당귀꽃 사이로 보이는 오두막은 산울림 영감이 사는 그런 집 같다.
올 가을은 산에 열매가 많이 맺혔다. 돌배나무 가지마다 열매가 너무 많이 덜려 가지들이 처져 있다. 밤사이 돌배가 수두룩이 떨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이것으로 술을 담근다고 하는데, 나는 쓸 일이 없어 나무 아래서 그 향기만을 맡고 다람쥐들이 주워 먹는다. 다람쥐가 앞발로 돌배를 들고 야금야금 먹는 모습은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다래도 예년에 볼 수 없을 만큼 넝쿨마다 주렁주렁 열렸다. 서리가 내리면 맛이 들 텐데 짐승들이 먹고 남기면 얼마쯤 내 차지도 될 것이다. 뒤꼍에 있는 산자두도 풍년을 맞았는데 밖에 나갔다가 며칠 만에 돌아왔더니 비바람에 죄다 떨어져 삭고 말았다. 그 열매의 행기로 온 산중의 벌떼들이 모여들어 붕붕거렸다.
땅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짓밟히고 허물리면서도 철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가 싶으니 그 모성적인 대지에 엎드려 사죄를 하고 싶다.
가을은 차맛이 새롭다. 고온 다습한 무더운 여름철에는 차맛이 제대로 안 난다. 여름이 가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만물이 생기를 되찾을 때 차향기 또한 새롭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이, 다기(茶器)도 바꾸어 쓰면 새롭다. 여름철에는 백자가 산뜻해서 좋고 여름이 지나면 분천사기나 갈색 계통의 그릇이 포근하다. 여름철에는 넉넉한 그릇이 시원스럽고, 가을이나 겨울철에는 좀 작은 것이 정겹다.
무더운 여름철에 발효된 차는 그 맛이 텁텁하고 빛이 탁해서 별로지만, 가을밤 이슥해서 목이 마를 때 발효된 차는 긴장감이 없어 마실 만하다.
녹차는 두 번 우리고 나면 세 번째 차는 그 맛과 향이 떨어진다. 홀로 마실 때 내 개인적은 습관은 두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밖에 나가 어정거리면서 가벼운 일을 하다가 돌아와 식은 무로 세 번째 차를 마시면 앉은 자리에서 잇따라 마실 때보다 그 맛이 새롭다. 애써 만든 그 공과 정성을 생각하면 두 번 마시고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해서 앉은 자리에서 세 잔을 연거푸 마시면 한두 잔 마실 때의 그 맛과 향기마저 반납해야 한다.
차의 분량은 물론 찻잔의 크기 나름이지만 찻잔의 반을 넘지 않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찻잔에 가득 차를 부으면 그 차맛을 느끼기 전에 배가 부르다. ? 차에는 차의 진미가 깃들일 수 없다. 차를 따르는 사람의 마음이 차의 품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차를 마실 때는 모든 일손에서 벗어나 우선 마음이 한가해야 한다. 그리고 차만 마시고 일어나면 진정한 차맛을 알 수 없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기를 매만지고, 차의 빛깔과 향기를 음미하면서 다실의 분위기도 함께 즐겨야 한다.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정치나 돈에 대한 것 말고 차에 어울리도록 맑고 향기로운 내용이어야 한다. 차를 마시면서 큰소리로 세상일에 참견하거나 남의 흉을 보는 것은 차에 결례이다.
지난여름 연꽃차를 마신 이야기를 해야겠다. 연꽃은 날씨에 따라 개회 시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맑게 갠 날은 아침 6시쯤에 꽃이 문을 열고 저녁 5시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꽃이 피었다가 오므라든다는 표현이다.
연꽃은 나흘 동안 피는데 이틀째 피어날 때의 향기가 절정이라고 한다. 이틀째 피어난 꽃에 주로 벌들이 모여든다. 연꽃차는 이틀째 핀 꽃이 오므라들 때 한두 잔 마실 정도의 차를 봉지에 싸서 노란 꽃술에 넣어 둔다. 이때 너무 많이 넣으면 그 무게를 못 이겨 꽃대가 꺾인다. 하룻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 꽃이 문을 열기를 기다려 차 봉지를 꺼내어 차를 우려 마시면 연꽃차만이 지닌 황홀한 향취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보통 차처럼 끓인 물을 식혀서 우리는 것보다는 차디찬 물로 차를 우리면 연못가에서 듣던 바로 그 향기를 음미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꽃한테는 너무 잔인한 방법이고 차의 정신에도 어긋나지만. 이틀째 개화한 꽃을 따서 그 안에 차를 한 움큼 넣고 비닐로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그때그때 꺼내 쓰면 된다고 한다. 옛 도반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나로서는 권할 만한 일이 못 된다. 1년을 두고 단 한 번 피어난 꽃이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
차의 진정한 운치는 담박하고 검소한 데 있다. 그릇이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차의 운치를 잃는다. 차의 원숙한 경지는 번거로운 형식이나 값비싼 그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릇에 너무 집착하면 담박하고 검소한 차의 진미를 잃게 된다.
맑은 바람 속에 맑은 차를 마시면서 맑은 정신을 지니자고 한 소리다. 글 쓰는 숙제를 마쳤으니 차나 한잔 마실까.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산자락에는 들꽃이 한창이다. 노란 좁쌀알 같은 꽃을 달고 하늘거리던 마타리가 한 고비 지나자, 개울가 습한 곳에는 용담이 보랏빛 꽃망울을 잔뜩 머금고 있다. 밭머리에 무리지어 핀 구절초와 야생 당귀꽃도 가을꽃 중에서는 볼 만하다. 개울가에서 당귀꽃 사이로 보이는 오두막은 산울림 영감이 사는 그런 집 같다.
올 가을은 산에 열매가 많이 맺혔다. 돌배나무 가지마다 열매가 너무 많이 덜려 가지들이 처져 있다. 밤사이 돌배가 수두룩이 떨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이것으로 술을 담근다고 하는데, 나는 쓸 일이 없어 나무 아래서 그 향기만을 맡고 다람쥐들이 주워 먹는다. 다람쥐가 앞발로 돌배를 들고 야금야금 먹는 모습은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다래도 예년에 볼 수 없을 만큼 넝쿨마다 주렁주렁 열렸다. 서리가 내리면 맛이 들 텐데 짐승들이 먹고 남기면 얼마쯤 내 차지도 될 것이다. 뒤꼍에 있는 산자두도 풍년을 맞았는데 밖에 나갔다가 며칠 만에 돌아왔더니 비바람에 죄다 떨어져 삭고 말았다. 그 열매의 행기로 온 산중의 벌떼들이 모여들어 붕붕거렸다.
땅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짓밟히고 허물리면서도 철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가 싶으니 그 모성적인 대지에 엎드려 사죄를 하고 싶다.
가을은 차맛이 새롭다. 고온 다습한 무더운 여름철에는 차맛이 제대로 안 난다. 여름이 가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만물이 생기를 되찾을 때 차향기 또한 새롭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이, 다기(茶器)도 바꾸어 쓰면 새롭다. 여름철에는 백자가 산뜻해서 좋고 여름이 지나면 분천사기나 갈색 계통의 그릇이 포근하다. 여름철에는 넉넉한 그릇이 시원스럽고, 가을이나 겨울철에는 좀 작은 것이 정겹다.
무더운 여름철에 발효된 차는 그 맛이 텁텁하고 빛이 탁해서 별로지만, 가을밤 이슥해서 목이 마를 때 발효된 차는 긴장감이 없어 마실 만하다.
녹차는 두 번 우리고 나면 세 번째 차는 그 맛과 향이 떨어진다. 홀로 마실 때 내 개인적은 습관은 두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밖에 나가 어정거리면서 가벼운 일을 하다가 돌아와 식은 무로 세 번째 차를 마시면 앉은 자리에서 잇따라 마실 때보다 그 맛이 새롭다. 애써 만든 그 공과 정성을 생각하면 두 번 마시고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해서 앉은 자리에서 세 잔을 연거푸 마시면 한두 잔 마실 때의 그 맛과 향기마저 반납해야 한다.
차의 분량은 물론 찻잔의 크기 나름이지만 찻잔의 반을 넘지 않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찻잔에 가득 차를 부으면 그 차맛을 느끼기 전에 배가 부르다. ? 차에는 차의 진미가 깃들일 수 없다. 차를 따르는 사람의 마음이 차의 품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차를 마실 때는 모든 일손에서 벗어나 우선 마음이 한가해야 한다. 그리고 차만 마시고 일어나면 진정한 차맛을 알 수 없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기를 매만지고, 차의 빛깔과 향기를 음미하면서 다실의 분위기도 함께 즐겨야 한다.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정치나 돈에 대한 것 말고 차에 어울리도록 맑고 향기로운 내용이어야 한다. 차를 마시면서 큰소리로 세상일에 참견하거나 남의 흉을 보는 것은 차에 결례이다.
지난여름 연꽃차를 마신 이야기를 해야겠다. 연꽃은 날씨에 따라 개회 시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맑게 갠 날은 아침 6시쯤에 꽃이 문을 열고 저녁 5시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꽃이 피었다가 오므라든다는 표현이다.
연꽃은 나흘 동안 피는데 이틀째 피어날 때의 향기가 절정이라고 한다. 이틀째 피어난 꽃에 주로 벌들이 모여든다. 연꽃차는 이틀째 핀 꽃이 오므라들 때 한두 잔 마실 정도의 차를 봉지에 싸서 노란 꽃술에 넣어 둔다. 이때 너무 많이 넣으면 그 무게를 못 이겨 꽃대가 꺾인다. 하룻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 꽃이 문을 열기를 기다려 차 봉지를 꺼내어 차를 우려 마시면 연꽃차만이 지닌 황홀한 향취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보통 차처럼 끓인 물을 식혀서 우리는 것보다는 차디찬 물로 차를 우리면 연못가에서 듣던 바로 그 향기를 음미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꽃한테는 너무 잔인한 방법이고 차의 정신에도 어긋나지만. 이틀째 개화한 꽃을 따서 그 안에 차를 한 움큼 넣고 비닐로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그때그때 꺼내 쓰면 된다고 한다. 옛 도반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나로서는 권할 만한 일이 못 된다. 1년을 두고 단 한 번 피어난 꽃이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
차의 진정한 운치는 담박하고 검소한 데 있다. 그릇이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차의 운치를 잃는다. 차의 원숙한 경지는 번거로운 형식이나 값비싼 그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릇에 너무 집착하면 담박하고 검소한 차의 진미를 잃게 된다.
맑은 바람 속에 맑은 차를 마시면서 맑은 정신을 지니자고 한 소리다. 글 쓰는 숙제를 마쳤으니 차나 한잔 마실까.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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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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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덥던 여름도 안녕을 고하고
이제 가을은 우리곁에 찾아 오겠지요
그것에 계절에 이치인것을~..
그렇군요~
녹차는 두번 우려 마시고
세번째는 나갔다 다시 와서 우려 마셔라...
그거 괜찮네요
차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나 관심이 있어
마시지는 않았었는데.....무식하네요....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올 가을에는 정말 차 맛이 새로울것 같습니다
땡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