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창다명(小窓多明)
도서명 | 서 있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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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우리들은 제정신을 차릴 겨를이 거의 없다. 제정신을 차리려면 차분히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만한 시간이 외적(外的)인 여건으로도 잘 허락되지 않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그걸 감내하지 못해 뛰쳐나가버린다. 무엇엔가 의지하지 않으면 허물어지도록 현대인들은 ‘척추뼈’가 휘어버린 것인가.
사람은 물론 사회적이 존재이므로 홀로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그러기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더러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일 저 일에 팔리거나 섞이다 보면 어느덧 내가 없어지고 만다. 일상적인 범속(凡俗)에 편승하여 표류하느라면 알짜인 나는 시들어버리고 박제된 내 껍데기만 남는다는 말이다.
홀로 있는 시간은 본래적인 자기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다. 발가벗은 자시노가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다. 하루하루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 앞이다. 그리고 내 영혼의 무게가 얼마쯤 나가는지 달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외부의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그리고 감촉에만 관심을 쏟느라고 저 아래 바다에서 울려오는 진정한 자기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다.
찻간이나 집안에서 별로 듣지도 않으면서 라디오를 켜놓은 것은, 그만큼 우리들이 바깥 소리에 깊이 중독되어버린 탓이다. 우리는 지금 꽉 들어찬 속에서 쫓기면서 살고 있다. 여백(餘白)이나 여유는 조금도 없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고 일에 쫓기면서 허겁지겁 살아가도 있는 것이다. 쫓기기만 하면서 살다 보니 이제는 쫓기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조차 마음을 놓지 못한 채 무엇엔가 다시 쫓길 것을 찾는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허(虛)가 아쉽다. 빈 구석이 그립다는 말이다. 일, 물건, 집, 사람 할 것 없이 너무 가득 차 있는 데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좀 덜 찬 데가, 좀 모자란 듯한 그런 구석이 그립고 아쉽다.
요즘 신흥 주택단지를 지나노라면 생각하는 바가 참 많다. 기껏해야 네댓 사람 모여서 살 집들일 텐데, 이 핵가족(核家族) 시대에 왜 그토록 거창하게만 짓고 있는 것일까. 자기 분수는 살펴보지도 않고 남이 그렇게 지으니까 덩달아 세우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중에는 벼락부자가 되어 달러나 한국은행권을 주체할 수 없어 집에다 바르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일정한 수입밖에 없는 봉급생활자도 그런 흉내를 내는 것 같으니. 그 경제구조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니 이웃 나라에서는 3백 부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대한민국에서는 그 몇 백 갑절이 팔렸다고 한다. 그 책들이 대개는 새로 지은 저택들의 응접실(書齋가 아니다)에 꽂혀 있더라니 그 왕성한 독서열에 모자를 벗고 싶었다.
또 한때는 국내에서 그 백과사전의 케이스만을 만들어 몇 천 질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난센스는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 집은 남들처럼 크게 지어놓았는데 유지비가 달려 추운 겨울 방안에서 두터운 외투를 입고 지낸다는 친구를 나는 알고 있다. 무드 때문에 거적을 쓴 격인가.
언젠가 젊은 건축가인 친구를 만나 푸념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보시오, 서민의 아들로 외국에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분이 기껏해서 남의 나라 흉내나 내는 그런 호화판 저택만 짓기요? 서민들이 우리네 풍토와 생활 감정에 알맞게 살 수 있는 정다운 집을 몇 채나 설계해 보았소?”
물론 그 친구 탓만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런 넋두리를 쏟았던 것이다. 부정부패의 요인은 이런 주택에도 구조적으로 깔려 있을 것 같다. 저택들의 유지비를 한번 상상해 보라. 지난 연말 초정(艸丁) 시백(詩伯)의 미술전을 보러 갔을 때 내 발걸음이 오래 머물렀던 곳은 ‘小窓多明 使我久坐(소창다명 사아구좌)’라는 글씨 앞에서였다. 추사(秋史)의 이 글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선뜻 떠나오기가 싫었다. 조그만 창에 햇볕이 밝아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오래 앉아 있게 한다니, 이 얼마나 넉넉하고 푸근한가. 이런 정복(淨福)의 분위기는 허세로 치장된 거택 같은 데서는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뒷마루의 솔바람소리와 뜰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얼마쯤의 외풍도 있는 그런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정한(靜閑)일 것이다.
이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는 인심도 후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슬이 푸른 ‘단지(團地)’ 바람에 아늑하고 푸근하던 동네가 자꾸만 사라져간다.
서운한 일이다.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사람은 물론 사회적이 존재이므로 홀로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그러기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더러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일 저 일에 팔리거나 섞이다 보면 어느덧 내가 없어지고 만다. 일상적인 범속(凡俗)에 편승하여 표류하느라면 알짜인 나는 시들어버리고 박제된 내 껍데기만 남는다는 말이다.
홀로 있는 시간은 본래적인 자기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다. 발가벗은 자시노가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다. 하루하루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 앞이다. 그리고 내 영혼의 무게가 얼마쯤 나가는지 달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외부의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그리고 감촉에만 관심을 쏟느라고 저 아래 바다에서 울려오는 진정한 자기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다.
찻간이나 집안에서 별로 듣지도 않으면서 라디오를 켜놓은 것은, 그만큼 우리들이 바깥 소리에 깊이 중독되어버린 탓이다. 우리는 지금 꽉 들어찬 속에서 쫓기면서 살고 있다. 여백(餘白)이나 여유는 조금도 없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고 일에 쫓기면서 허겁지겁 살아가도 있는 것이다. 쫓기기만 하면서 살다 보니 이제는 쫓기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조차 마음을 놓지 못한 채 무엇엔가 다시 쫓길 것을 찾는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허(虛)가 아쉽다. 빈 구석이 그립다는 말이다. 일, 물건, 집, 사람 할 것 없이 너무 가득 차 있는 데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좀 덜 찬 데가, 좀 모자란 듯한 그런 구석이 그립고 아쉽다.
요즘 신흥 주택단지를 지나노라면 생각하는 바가 참 많다. 기껏해야 네댓 사람 모여서 살 집들일 텐데, 이 핵가족(核家族) 시대에 왜 그토록 거창하게만 짓고 있는 것일까. 자기 분수는 살펴보지도 않고 남이 그렇게 지으니까 덩달아 세우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중에는 벼락부자가 되어 달러나 한국은행권을 주체할 수 없어 집에다 바르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일정한 수입밖에 없는 봉급생활자도 그런 흉내를 내는 것 같으니. 그 경제구조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니 이웃 나라에서는 3백 부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대한민국에서는 그 몇 백 갑절이 팔렸다고 한다. 그 책들이 대개는 새로 지은 저택들의 응접실(書齋가 아니다)에 꽂혀 있더라니 그 왕성한 독서열에 모자를 벗고 싶었다.
또 한때는 국내에서 그 백과사전의 케이스만을 만들어 몇 천 질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난센스는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 집은 남들처럼 크게 지어놓았는데 유지비가 달려 추운 겨울 방안에서 두터운 외투를 입고 지낸다는 친구를 나는 알고 있다. 무드 때문에 거적을 쓴 격인가.
언젠가 젊은 건축가인 친구를 만나 푸념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보시오, 서민의 아들로 외국에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분이 기껏해서 남의 나라 흉내나 내는 그런 호화판 저택만 짓기요? 서민들이 우리네 풍토와 생활 감정에 알맞게 살 수 있는 정다운 집을 몇 채나 설계해 보았소?”
물론 그 친구 탓만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런 넋두리를 쏟았던 것이다. 부정부패의 요인은 이런 주택에도 구조적으로 깔려 있을 것 같다. 저택들의 유지비를 한번 상상해 보라. 지난 연말 초정(艸丁) 시백(詩伯)의 미술전을 보러 갔을 때 내 발걸음이 오래 머물렀던 곳은 ‘小窓多明 使我久坐(소창다명 사아구좌)’라는 글씨 앞에서였다. 추사(秋史)의 이 글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선뜻 떠나오기가 싫었다. 조그만 창에 햇볕이 밝아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오래 앉아 있게 한다니, 이 얼마나 넉넉하고 푸근한가. 이런 정복(淨福)의 분위기는 허세로 치장된 거택 같은 데서는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뒷마루의 솔바람소리와 뜰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얼마쯤의 외풍도 있는 그런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정한(靜閑)일 것이다.
이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는 인심도 후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슬이 푸른 ‘단지(團地)’ 바람에 아늑하고 푸근하던 동네가 자꾸만 사라져간다.
서운한 일이다.
<1975 . 3>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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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불일암에서 뵈었던 스님
동요를 같이 부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지기전에 내려가라며
등떠밀며
하산~~
하며 산이 떠나가라 소리지르시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이제 다 내려놓고
그야말로 하산하신지 3년이 되어 간다.
홀로 계신 그 곳은
작은 창에 햇볕 밝게 드는지...
법정 스님!
참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