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의 가을은 바람결에 묻어온다. 처서를 고비로 바람결은 완연히 달라진다. 아침나절까지만 해도 무덥고 끈적거리던 그 바람결이 오후가 되며 어느새 습기를 느낄 수 없도록 마른 바람으로 바뀐다. 문득 초가을의 입김을 느끼게 된다.
이 무렵 절에서는 여름 안거(安居)가 끝난 해제(解制)철이라 다들 하산을 하고 절 안이 텅 빈다. 빈 뜰에 곧잘 산비둘기가 내리고 다람쥐들이 툇마루에 올라 재롱을 피운다. 여름철에 못 다한 열정을 쏟음인지, 더러는 소나기가 천둥 번개를 데리고 온 골짝을 휘저어 놓기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선득거려 군불을 지피고, 삼베옷은 까슬거리어 벗어놓아야 한다. 문득 앞산을 바라보면 그새 산색(山色)이 수척해졌다. 허허로운 바람소리가 스쳐간다.
지리산에 있는 어느 궁벽한 암자에서 지낼 때였다. 그때도 여름철 안거가 끝난 뒤라 함께 지내던 도반(道伴)들은 다 하산해버리고 나 혼자 남아 텅 빈 암자를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은 등산 꾼도 구경꾼도 없던 때라 암자는 그야말로 적적요요(寂寂寥寥)하여 무일사(無一事)였다. 사람이라고는 약초를 캐러 다니는 마을 사람들이 이따금 지나갈 뿐이었다. 다로(茶爐)에 물은 끓어도 더불어 마실 이가 없는 그런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양을 마치고 헌식(獻食)을 하기 위해 뒤꼍 헌식돌로 나갔더니 거기 꽤 큰 쥐 한 마리가 있었다. 나를 보고도 달아나지 ㅇ낳고 헌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헌식이란 불가에서 공양할 때 배고픈 중생 몫으로 따로 떠놓았다가 베푸는 일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 여름철 내내 헌식돌이 깨끗했던 연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헌식한 음식은 대개 새나 다람쥐가 와서 먹게 마련인데, 어떤 때는 전날 놓아둔 음식이 남아 지저분할 때가 있다. 지금가지 헌식돌이 말끔했던 것은 날마다 이 쥐가 와서 먹어치웠기 때문인 것이다. 하루 한 끼밖에 먹지 않을 때라 한낮에 공양을 끝내고 헌식을 하러 가면 으레 그 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전에는 쥐꼬리만 보아도 소름이 끼치곤 했는데,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쥐를 대하니 오히려 반가웠다 더구나 나를 의지하고 사는 중생이거나 생각하면 어떤 연민의 정마저 들었다. 헌식도 전보다 좀 많이 주었다. 쥐는 눈에 띄게 무럭무럭 잘 보통 쥐의 세 곱은 되었다. “너 오늘도 왔구나, 어서 먹어라”하고 헌식을 주면, 내 곁에 다가와 먹을 만큼 우리는 길이 들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쥐에게 한마디 일러주어야겠다고 생각이 미쳤다. 그날도 쥐는 어김없이 헌식돌에 앉아 있었다. 쥐가 다 먹기를 기다려 말을 걸었다.
“쥐야, 네게도 영식(靈識)이 있거든 내 마을 들어라. 네가 여러 생(生)에 익힌 업보로 그같이 흉한 탈을 쓰고 있는데, 이제 청정한 수도장에서 나와 같이 지낸 이 인연으로 그 탈을 벗어버리고 내생(來生)에는 좋은 몸 받아 해탈을 하거라. 언제까지 그처럼 흉한 탈을 쓰고 있어서야 되겠니? 어서어서 해탈하거라.”
쥐는 그대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그 다음날 헌식돌에 나가니 쥐가 보이지 않았다. 웬일인가 했는데 그 쥐는 헌식돌 아래 죽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미더워하고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않는 막힌 세상에서, 쥐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구나 싶으니 대견스러웠다. 하는 짓에 따라 그 거죽이 다를 뿐 착하게 살려는 생명의 근원은 조금도 다를 게 없음을 거듭거듭 확신할 수 있었다.
염불을 하고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그해 가을 나는 그 쥐의 명복을 빌면서 줄곧 마른 바람소리를 옆구리께로 들었다.
<1974 . 10>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샘터) 中에서......
옛 어른들은 감나무 감을 모두 따는게 아니고
까치밥 하나둘 정도 놓아두고
수확을 했다 이렇게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지헤
참 고마운 마음이며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정신이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