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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언약

오작교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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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서 있는 사람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각박해질수록 이름도 성도 기억하기 어려운 온갖 법률이 쏟아져 나와 우리를 얽어맨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그토록 많은 규제가 곡 있어야만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서슬이 퍼런 법률이 제정 공포되면 세상이 평온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시끄럽고 극악한 범죄가 날로 늘어가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나라가 부패하면 할수록 이에 비례하여 법률이 늘어난다고 한 타키투스의 말은 음미 할 만하다. 무수한 그 법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비법(非法)이 자행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 우리들은 법 없이도 잘 살았던 옛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산길을 걸어가노라면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까 하여 돌무더기나 나뭇가지로 표시해 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길에 선 사람들은 그와 같은 표시가 얼마나 고마운 길잡이인가를 알아차릴 것이다. 언어나 문자를 빌지 않고서도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가리켜주고 있다. 그 표시는 우리를 규제하기는커녕 기쁘고 감사하게 한다. 약속도 이렇듯 인간적인 신의에 바탕을 둘 때 그것은 신성한 것이다.

   언젠가 은사인 효봉 선사로부터 들은 이야기. 선사가 젊은 시절 훨훨 떨치고 남과 북으로 운수행각을 할 때, 한 암자에는 예전부터 말없는 언약이 지켜져 내려왔다. 지대가 높고 인적이 미치지 않는 그 암자에서는 선승(禪僧)들이 여름 한철을 착실하게 정진할 수 있었다. 시월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가서야 걷히므로, 시월 중순께가 되면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선사가 여름철 안거(安居)를 하기 위해 그 암자에 당도했을 때, 빈집에 양식과 장작이 쌓여 있고 뒤뜰에 묻힌 독에는 김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선사는 그 여름을 먹고 땔 것에 걱정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가을이 되어 하산하기에 앞서 마을에 내려가 탁발을 하여 그전처럼 양식과 김장을 마련하고 땔감을 해두었다. 몇 해가 지난 후 다시 그곳에 가보았더니 누군가 지낸 흔적은 있었지만, 양식과 땔감은 여전히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

   오늘의 우리 귀에는 까마득한 신화나 이끼 낀 전설처럼 들려오지만, 그 시절 그 암자에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런 가풍(家風)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없는 언약이었다. 서로가 믿고 의지하려는 인간적인 신의에서 이루어진 아름다운 풍속인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강제성도 제재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착한 의지가 작용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이 같은 사람을 못 미더워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다할 수 없는 인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웃끼리 두려워하고 거리는 풍토에서는 아무리 약속을 다짐하고 두껍고 질긴 종이에 서명하고 날인하다 할지라도 저 말없는 언약에 미칠 수 없다.

   얼마 전 지리산 등반길에 해발 1천7백 고지나 되는 외딴 암자에서 묵고 온 일이 있다. 넓지도 않은 방안 벽장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고봉정상(高峰頂上)에서 잃어버릴 게 무엇이기에 쇠를 채워놓았을까 싶어서였다. 아마도 그곳에서는 말없는 언약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1975 . 1>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샘터) 中에서......
 
 

  
2014.05.28 (15:05:14)
[레벨:6]斗 山
 
 
 

사회는 도덕과 윤리가 판을 처야 정직하고 기본질서가

활개를 친다

법을 많이 만들수록 부폐한 사회가 된다는 이야기 참

마음에 들어옵니다

우리나라는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없는 욕심의 욕망

망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길을 걸어가면 좋은데 이길 저길을 걸어가기

원하니 가다가 쓰러지기 일수입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121.186.177.152)
  
2014.11.26 (16:11:10)
[레벨:28]圓成
 
 
 

제가 1978년도 군생활하면서 처음 접한 스님의 책이 저를 불자로 이끌었습니다.

"서있는 사람들" 늘 제 맘속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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