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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出家)

오작교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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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서 있는 사람들
    어제부터 숲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세차게 지나는 바람소리가 해안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 같다. 숲길에는 낙엽이 흥건히 쌓여 있으리라. 잎이 져버리면 빈 가지들만 초겨울의 하늘 아래 허허로이 남을 것이다.

   가지를 떠난 잎들은 어디로 향할까? 바람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마침내는 어느 나무 밑이나 풀뿌리 곁에 누워서 삭아지겠지. 그러다가 새봄이 오면 뿌리에 흡수되어 수액을 타고 새로운 잎이나 꽃으로 변신할 것이다. 그렇다. 가지에서 져버린 나뭇잎처럼, 떠나지 않고서는 변신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가을, 산으로 돌아온 나는 그 무렵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몇 번이고 한밤의 잠에서 깨어났었다. 말없는 산이지만 뒤꼍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를 가지고도 나를 불러 깨우곤 했었다. 그동안 시정(市井)에서 무디어진 내 귀를 산바람이 맑게 씻어주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사람은 자기 환경을 몸소 개선해 보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개인이아 조직체나 다를 바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조직의 힘을 빌려 자기 환경을 개선하려고 한다. 기존 질서에 막대한 피해를 끼쳐가면서까지 자기네 의지를 강행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

   그러나 권력도 조직도 없는 개인이 자기 환경을 개조하거나 재구성하려면, 그는 자기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이웃에게 폐를 끼칠 것도 없이 몸소 버리고 떠난다. 그 숨 막히는 조직의 쇠고리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출가(出家)란 이와 같이 버리고 떠남이다. 묵은 집, 집착의 집, 갈등의 집에서 떠났다고 해서 출가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는 탐욕이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 이욕(離慾)이라고도 하고, 진개권(塵芥圈 - 먼지와 쓰레기 구역)에서 뛰쳐나왔다고 해서 출진(出塵)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출가는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추구요 끝없는 생명의 발현이다.

   출가하여 수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따금 대중가요조의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어째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습니까?” 이런 유의 물음은 가톨릭의 신부나 수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묻는 쪽에서는 야릇한 호기심을 가지고 묻겠지만 듣는 쪽에서는 그야말로 대중가요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주간지의 소재라도 됨직한 기구한 사연이 흘러나와야 질문자의 기대에 호응될 텐데, 그렇지 못할 때는 이쪽이 도리어 미안해진다.

   언젠가 명동에 있는 가톨릭 여학생관에서 강론을 하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석가모니와 같은 환경이었다면 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은 출가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야수다라가 있었다. 요즘의 표현을 빈다면 야수다라는 미스 인디어였다. 현대의 미녀처럼 얼굴과 몸매만 말쑥한 게 아니고 안으로 지혜와 덕을 갖추고 있어, 말하자면 안팎이 갖추어진 그런 미인을 반려로 맞이했던 것이다.

   또 그에게는 왕권이 보장되어 있었다. 국민의 눈치를 보거나 개헌을 할 수고도 없이 그에게는 전제군주의 절대 권력이 받아놓은 밥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물질적인 부를 실컷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여건들을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 누가 뭐라 하건, 그런 조건들이 그의 치수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어째서 출가했는가? 부처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묻는다 할지라도 나는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내 식대로 살기 위해서 집을 떠났노라고. 세상이 무상해서라거나 불교의 진리에 매혹되어서라거나 혹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서라고는 말할 수 없다. 덧없는 게 어디 세상뿐인가. 출세간의 일도 덧없기야 마찬가지지. 그리고 불교의 진리가 무엇인지조차 출간 전의 나는 알지 못했다. 중생구제 운운은 현재 한국 불교도의 처지로서는 당치않은 표현이다. 그럼 어째서 하고많은 길 중에서 불교 수행승의 길을 찾아 나섰던가. 그것은 뭐라 말로하기 어려운 내 생명의 요구였을 것이다. 시절인연이 다가서자 그 길로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다생(多生)에 길들인 인ㄴ연의 끄나풀 같은 것이 나를 그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자기답게 살려는 사람이 자기답게 살고 있을 때는 감사와 환희로 충만해 있지만, 그러지 못할 대 그는 괴로워한다. 자기 몫의 생을 아무렇게나 낭비해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하여 다시 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한다. 일산이 안이해지거나 무력해질 때, 이게 아닌데 싶으면 지녔던 것을 선뜻 버리는 일을 한다. 책을 정리해 흩어 버리고 옷가지를 나누어서 덜어버린다. 그리고 범속한 관계들에 전지(剪枝)를 가한다. 그리고 나서도 성에 차지 않으면 훌쩍 떠나와 버린다.

   출가생활 20여 년이 되는 그동안 나는 몇 번인가 이런 업(業)을 익혀왔다.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드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갈 때 물은 소생한다. 출렁이며 흐르는 물은 고여 있던 물과는 그 바탕이 같을 수 없다. 얽힘이 적은 단신인 출가 수행승은 행동거지가 비교적 자유스럽다. 초기 승단에서는 한 나무 아래서 하루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그 까닭은 거처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에서도 그렇겠지만, 항상 살아 움직이면서 수행하고 교화하라는 의미가 보다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후기에 이르러 안거(安倨) 중에는 한곳에 머물러 수행해야 할 의무가 지워진다. 안거가 끝난 유행기(遊行期)에는 구름이나 물처럼 아무데고 막힘없이 다니면서 살라는 뜻에서 운수승(雲水僧) 또는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는 말이 나온다. 운수행각이야말로 출가수행승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홀가분한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출가의 본질적인 의미가 반드시 머리 깎고 수도승이 되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반 시민들과 다른 제복을 하고 생활양식을 달리하면서 사는 것은 종파적인 출가생활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인 출가는 비본래적인 자기로부터 벗어나 본래적인 자기로 돌아가는 데 그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버리고 떠남으로써 거듭거듭 태어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가지를 떠난 나뭇잎이 부리로 돌아가 새 움을 틔우듯이.

   사람이 주어진 환경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일반 동물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창조적인 노력을 총해 자신을 재구성하고, 몸담아 살고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감으로써 고등동물의 직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자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출가의 영원한 교훈이다. 버리지 않고서는 새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아(無我)란 말은 자기 자신을 깡그리 없애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자신을 털어버림으로써 본질적인 자신을 크게 일깨우라는 뜻. 그러기 위해서는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인도 사람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진리를 구현하려면 찾아 나서는 일에 못지않게 강한 이욕(離慾)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

   라마크리슈나의 <코타므리트(不滅의 말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사나이가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목욕을 가려고 했다. 그때 아내가 나선다.

   “당신은 아무 능력도 없이 나이만 먹고 날마다 빈둥거리기만 하니 큰일이군요. 내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거예요. 이웃집 아무개는 여남은 명이나 되는 소실을 한 사람씩 버리고 있대요. 당신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없겠지만.”

   사내는 말했다.

   “한 사람씩 버리고 있다고? 그 사람은 다 버릴 수 없을 거야. 참으로 버리는 사람은 한 사람씩 버리지는 않지.”

   아내는 어처구니없어 하며 남편을 비웃었다. 이때 사나이는 아내에게

   “참으로 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야. 보라구, 나는 이렇게 떠나니까.”

   사나이는 수건을 어깨에 걸친 채 집을 나섰다. 집안일ㄹ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오거나, 집이 있는 쪽을 한 번도 뒤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동을 이욕(利慾), 혹은 출가(出家)라고 한다. 알아차렸으면 곧 그 자리에서 버리는 것이다. 버리기 위해서는 맺고 끊을 줄 아는 굳센 의지가 필요할 뿐, 하나씩 버리려고 들면 끝이 없지만, 훌쩍 떠나버리면 모든 것을 버리게 된다. 다 갖지 못해 부자유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 버리고 떠남으로써 오히려 홀가분한 자유를 누리려는 것이다. 내 인생을 내가 살기 위해서
 
<1976 . 12>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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