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에서
도서명 | 무소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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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취미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그렇기에 아무개의 취미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밑받침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나 특수 사정으로 문 밖에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여행이란 우리들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호주머니의 실력이나 일상적인 밥줄 때문에 선뜻 못 떠나고 있을 뿐이지 그토록 홀가분하고 마냥 설레는 나그네 길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다. 봄날의 노고지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입술에서는 저절로 휘파람이 새어 나온다.
훨훨 떨치고 나그네 길에 오르면 유행가의 가사를 들 출 것도 없이 인생이 무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나날의 나를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구름을 사랑하던 헷세를, 별을 기리던 생텍쥐페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낯선 고장을 헤매노라면 더러는 옆구리께로 허허로운 나그네의 우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해 가을, 나는 한 달 가까이 그러한 나그네 길을 떠돌았다. 승가(僧家)의 행각은 세상 사람들의 여행과는 다른 데가 있다. 볼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어디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다.
구름처럼 떠돌고 물처럼 흐른다고 해서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선가(禪家)에서는 석 달 동안 한 군데서 안거하고 나면 그 다음 석 달 동안은 행각을 하도록 되어 있다. 행각은 관광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교화하고 정진할 수 있는 기회다. 말하자면 덧없는 세상 물정을 알면서 수행하라는 뜻에서다.
행장을 풀고 하룻밤 쉬는 곳은 물론 우리들의 절간이다. 두어 군데 말고는 다들 낯익은 사원이었다. 해질녘 절 동구 길에서 듣는 만종(晩鐘) 소리와 발을 담그고 땀을 들이는 차가운 개울물, 객실에 들어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회포를 풀면서 드는 차의 향기가 나그네의 피로를 다스려 주곤 했었다.
이렇게 지난 가을 동으로 서로 그리고 남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입산 이후의 자취를 되새겨 보았다. 그때마다 지나간 날의 기억들이 저녁 물바람처럼 배어들었다. 더러는 즐겁게 혹은 부끄럽게 자신을 비춰 주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 군데만은 차마 가볼 수 없는 데가 있었다. 아니 참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가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시절, 구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배웠고, 또한 빈틈없는 정진으로 선(禪)의 기쁨을 느끼던 그런 도량이라 두고두고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있는 쌍계산 탑전!
그곳에서 나는 16년 전 은사 효봉 선사를 모시고 단 둘이서 안거를 했었다. 선사에게서 문자를 통해 배우기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한 권밖에 없지만 이곳 지리산 시절 일상생활을 통해서 입은 감화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시절 내가 맡은 소임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진 시간이 되면 착실하게 좌선을 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탁발(托鉢-동냥)을 해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40리 밖에 있는 구례 장을 보아왔다.
하루는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설을 한 권 사왔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라고 기억된다. 아홉 시 넘어 취침 시간에 지대방(고방)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 놓고 책장을 펼쳤다. 출가한 후 불경 이외의 책이라고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던 참이라 그때의 그 책은 생생하게 흡수되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읽는데 방문이 열렸다. 선사는 일고 있는 책을 보시더니 단박 태워버리라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출가’가 안 된다고 했다. 세속에 미련이 없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워 버렸다. 최초의 분서였다.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 거기에서 얻는 것은 복잡한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 의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전까지 나는 집에 두고 나온 책 때문에 꽤 엎치락뒤치락 거렸는데. 이 분서를 통해 그러한 번뇌도 함께 타 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풋중 시절에는 온갖 분별을 조장하는 그럴ㄴ 책이 정진에 방해될 것은 물론이다. 만약 그때 분서의 일이 없었다면 책에 짓눌려 살았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찬거리가 떨어져 아랫마을에 내려갔다가 낮 공양 지을 시간이 예정보다 십 분쯤 늦었었다. 선사는 엄숙한 어조로 “오늘은 단식이다. 그렇게 시간관념이 없어서 되겠니?” 하는 것이었다. 선사와 나는 그 시절 아침에는 죽을, 점심때는 밥을 먹고, 오후에는 전혀 먹지 않고 지냈었다. 내 불찰로 인해 노사(老師)를 굶게 한 가책은 그때뿐 아니라 두고두고 나를 일깨웠다.
나그넷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나 특수 사정으로 문 밖에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여행이란 우리들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호주머니의 실력이나 일상적인 밥줄 때문에 선뜻 못 떠나고 있을 뿐이지 그토록 홀가분하고 마냥 설레는 나그네 길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다. 봄날의 노고지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입술에서는 저절로 휘파람이 새어 나온다.
훨훨 떨치고 나그네 길에 오르면 유행가의 가사를 들 출 것도 없이 인생이 무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나날의 나를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구름을 사랑하던 헷세를, 별을 기리던 생텍쥐페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낯선 고장을 헤매노라면 더러는 옆구리께로 허허로운 나그네의 우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해 가을, 나는 한 달 가까이 그러한 나그네 길을 떠돌았다. 승가(僧家)의 행각은 세상 사람들의 여행과는 다른 데가 있다. 볼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어디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다.
구름처럼 떠돌고 물처럼 흐른다고 해서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선가(禪家)에서는 석 달 동안 한 군데서 안거하고 나면 그 다음 석 달 동안은 행각을 하도록 되어 있다. 행각은 관광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교화하고 정진할 수 있는 기회다. 말하자면 덧없는 세상 물정을 알면서 수행하라는 뜻에서다.
행장을 풀고 하룻밤 쉬는 곳은 물론 우리들의 절간이다. 두어 군데 말고는 다들 낯익은 사원이었다. 해질녘 절 동구 길에서 듣는 만종(晩鐘) 소리와 발을 담그고 땀을 들이는 차가운 개울물, 객실에 들어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회포를 풀면서 드는 차의 향기가 나그네의 피로를 다스려 주곤 했었다.
이렇게 지난 가을 동으로 서로 그리고 남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입산 이후의 자취를 되새겨 보았다. 그때마다 지나간 날의 기억들이 저녁 물바람처럼 배어들었다. 더러는 즐겁게 혹은 부끄럽게 자신을 비춰 주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 군데만은 차마 가볼 수 없는 데가 있었다. 아니 참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가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시절, 구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배웠고, 또한 빈틈없는 정진으로 선(禪)의 기쁨을 느끼던 그런 도량이라 두고두고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있는 쌍계산 탑전!
그곳에서 나는 16년 전 은사 효봉 선사를 모시고 단 둘이서 안거를 했었다. 선사에게서 문자를 통해 배우기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한 권밖에 없지만 이곳 지리산 시절 일상생활을 통해서 입은 감화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시절 내가 맡은 소임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진 시간이 되면 착실하게 좌선을 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탁발(托鉢-동냥)을 해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40리 밖에 있는 구례 장을 보아왔다.
하루는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설을 한 권 사왔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라고 기억된다. 아홉 시 넘어 취침 시간에 지대방(고방)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 놓고 책장을 펼쳤다. 출가한 후 불경 이외의 책이라고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던 참이라 그때의 그 책은 생생하게 흡수되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읽는데 방문이 열렸다. 선사는 일고 있는 책을 보시더니 단박 태워버리라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출가’가 안 된다고 했다. 세속에 미련이 없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워 버렸다. 최초의 분서였다.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 거기에서 얻는 것은 복잡한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 의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전까지 나는 집에 두고 나온 책 때문에 꽤 엎치락뒤치락 거렸는데. 이 분서를 통해 그러한 번뇌도 함께 타 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풋중 시절에는 온갖 분별을 조장하는 그럴ㄴ 책이 정진에 방해될 것은 물론이다. 만약 그때 분서의 일이 없었다면 책에 짓눌려 살았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찬거리가 떨어져 아랫마을에 내려갔다가 낮 공양 지을 시간이 예정보다 십 분쯤 늦었었다. 선사는 엄숙한 어조로 “오늘은 단식이다. 그렇게 시간관념이 없어서 되겠니?” 하는 것이었다. 선사와 나는 그 시절 아침에는 죽을, 점심때는 밥을 먹고, 오후에는 전혀 먹지 않고 지냈었다. 내 불찰로 인해 노사(老師)를 굶게 한 가책은 그때뿐 아니라 두고두고 나를 일깨웠다.
나그넷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971
글출처 : 무소유(법정스님, 범우사) 中에서......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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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스님의 수행과 계율의 실천을 존경해왔는데, 은사스님의 청정한 가르침이 밑바탕이 돼있었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