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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

오작교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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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입동立冬이 지난 11월의 숲은 가을 잔치를 마치고 텅 비어 있다. 나무들은 겨울을 받아들일 채비를 끝낸 채 묵묵히 서 있다. 첫눈이 내리고 개울가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달력에 의하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그런 계절이다.

   한동안 오두막을 비워두고 있다가 돌아와 보면 오두막은 주인을 기다리며 사뭇 여위어 있다. 집 둘레에 노루와 토끼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걸 보면 그 애들이 빈집을 지켰던 모양이다. 문을 열어젖히고 먼지를 털어내고 쓸고 닦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 굴뚝에 허연 연기가 피어 올라오면 이때 비로소 집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집은 그 안에 사람이 살아야 집으로서 빛을 발한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혼이 빠져 나간 육신처럼 그것은 단순한 자재로 엮인 형해刑骸일 뿐이다. 난로에 불을 지펴 마루방에서 냉기를 몰아내고 방 안에 훈훈한 온기가 돌면, 오두막이 좋아라 하며 제 기능을 발휘한다. 집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아늑하고 편안함이 차향기처럼 은은히 번진다.

   지난밤에는 늦도록 책을 읽었다. 현대 문명사회의 비판서이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를 담은 일종의 명상서적이다. 류시화 시인의 유창하고 아름다운 번역으로 펴낸 것인데, 책 이름은<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이다.

   백인 추장(미국의 대통령)이 자기들에게 땅을 팔라고 하는 말에, "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우리로부터 사들이겠단 말인가."라고 항변한 시애틀 추장의 그 유명한 연설문을 비롯하여, 여러 부족의 추장들이 문명사회에 던진 대지와 인간의 관계를 역설한 글들로 엮여 있다.

   20세기가 끝나가는 오늘의 시점에서 어째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가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는가를 우리는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물질문명의 찌꺼기인 온갖 공해와 환경오염이 날로 극심해가는 오늘날, 원천적으로 자연인인 인디언의 삶의 지혜를 빌려서 극복의 문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문명인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라.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들의 삶도 풍요롭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땅을 더럽히면 곧 그들 자신의 삶도 더럽혀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 또한 우리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문명인들의 도시 풍경에 대해서 자신들의 눈에는 하나의 고통이라고 하면서 그 증상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당신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라는 곳이 없다. 봄의 나뭇잎 스치는 소리들 듣거나 곤충의 날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우리들의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은 호수의 수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내린 비에 씻긴 바람 그 자체의 향기를 좋아한다. 우리들에게 공기는 더없이 소중한 것, 그것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똑같이 숨결을 나누어 갖기 때문이다."

   백인과 인디언들은 그 삶의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오글라라 수우족의 추장 '네 자루의 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명인들은 뭐든지 글로 기록하며, 그래서 항상 종이를 갖고 다닌다. 그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워싱턴에는 그들이 우리 인디언들에게 했던 약속을 기록한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그걸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디언은 종이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된다. 인디언은 결코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그러나 문명인들의 경우는 일단 서류를 잊어버렸다 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네즈 페르세족의 추장 '고산지대로 달려가는 천둥'은 인간의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는 '종은 말'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좋은 언어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진 못한다. 문명인들은 말만 늘어놓고 아름다운 언어에 매혹되기만 할 뿐 실천하지 않는다. 아무런 결과도 없는 '말뿐인 말들'에 나는 지쳤다. 그 많은 좋은 언어들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에는 찬바람이 분다. 세상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말을 떠들어 대고 있다."

   백인들로부터 번번이 배신을 겪은 끝에 그는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멸망사>를 펼쳐 보면, 백인들이 원주민인 인디언에 대해서 얼마나 거짓말을 해댔는지, 그리고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소상히 알 수 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디언에 대한 연민의 정과 함께 침략자인 백인들에 대해서 분노를 억제하기 어렵다.

   천둥 추장은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가 문명인들의 학교를 마다하는 이유가 있다. 학교를 세우면 그들은 교회를 세우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끝없이 하느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우리는 이땅에 있는 걸 가지고는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위대한 정령(신)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는 위대한 정령이 만물을 만들어 놓은 대로 세상 것에 만족하며 손대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인들은 강이나 산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바꿔 버린다. 그들은 그것을 창조라고 부르지만, 우리 눈에는 철없는 파괴로 보일 뿐이다."

   그는 대지를 적시며 흐르는 강과 내가 서 있는 이 대지를 세상 어느 것보다도 사랑한다면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

   "자기 조상이 묻힌 대지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들짐승보다 못한 자이다." 우리가 몸담아 살아가는 하나뿐인 지구를 형편없이 허물며 더럽히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델라웨어족의 추장 '상처 입은 가슴'은 다음과 같은 지혜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대지 전체가 어머니의 품이고 그곳이 곧 학교이며 교회라고 믿는다. 대지 위의 모든 것이 책이며 스승이고 서로를 선한 세계로 인도하는 성직자들이다. 우리는 그 밖의 또 다른 교회를 원치 않으며, 우리를 무조건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 따름이다.

   홀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된다. 인디언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주 평원이나 숲속에 들어가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문명인들은 그것을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한 인간이 이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자기 확인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신 앞에 겸허해진다. 자연만큼 우리에게 겸허함을 가르치는 것도 없다. 자연만큼 순수의 빛을 심어주는 것은 없다. 자연과 멀어진 문명인들은 문명화되는 속도만큼 순수의 빛을 잃는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영혼이 보다 투명해진다.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펼쳐 볼 지혜의 말씀은 바로 이런 책이다. 어떤 것이 진정한 문명인이고 야만인인지를 생각케 하는 감동적인 잠언이다.
 

1993. 12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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