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 연꽃이 없더라
도서명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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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원도 고랭지에는 감자꽃이 한창이라 더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엽게 피어난 그 꽃과 은은한 향기에 반쯤 취할 때가 있다. 감자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는 고장에 와 지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감자를 먹을 때 그 꽃과 향기도 함께 음미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식탁은 보다 풍성하고 향기로워질 것이다.
풀과 나무는 다들 자기 나름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웃을 닮으려 하지 않고 패랭이는 패랭이답게, 싸리는 싸리답게 그 자신의 삶을 꽃피우고 있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은 어떤 형태로건 저마다 삶의 가장 내밀한 속뜰을, 꽃으로 피워 보이고 있다. 그래서야 그 꽃자리에 이 다음 생으로 이어질 열매를 맺는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고달프고 팍팍한 나날에 만약 꽃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꽃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곱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우리 이웃이다.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조화를, 거칠고 메말라가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이 열어 보이면서 깨우쳐주는 고마운 존재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밥주머니를 채우는 먹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때로는 밥 한 그릇보다 꽃 한 송이가 더 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위장을 채우는 일과 마음에 위로를 받는 일은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중요한 몫이다.
그런데 이렇듯 아름답고 향기롭고 조촐한 꽃이 어떤 과시나 과소비로 전락된다면,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꽃에 대한 모독이요 고문이다. 단 몇 시간을 치장하기 위해 그 많은 꽃들을 꺾어다 늘어놓는 일은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할지라도 꽃다운 일이 못 된다. 장례식을 비롯하여 행사장에 무더기 무더기로 동원되어 시들어 가는 꽃들을 대할 때마다 탐욕스럽기까지 한 인간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실망과 거부반응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무고한 꽃들을 괴롭히지 말 일이다.과시와 허세와 탐욕으로 여리고 사랑스런 꽃을 짓밟지 말 일이다.
7월은 연꽃이 피는 계절, 엊그제 전주 덕진공원에 가서 연꽃을 보고 왔다. 해마다 7월 중순이면 마음먹고 덕진에 가서 한나절 연못가를 어정거리면서 연꽃과 놀다가 오는 것이 내게는 연중행사처럼 되어 있다.
장마철이라 그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다른 구경꾼도 없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연못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서 연꽃만이 지닌 신비스런 향기를 들으면서(맡는다는 표현은 좀 동물적이니까) 연잎에 구르는 빗방울을 한참 지켜보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방울도 연잎에서는 겨우 좁쌀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함께 일렁이다가 얼마만큼 고이면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리는데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아하!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연꽃을 제대로 보고 그 신비스런 향기를 들으려면 이슬이 걷히기 전 이른 아침이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독립기념관에 들어 보았다. 한 가지 일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존경하는 원로화가로 부터 작년(1992년)에 들은 말인데, 나는 그때의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 정원에 대해서 관계 기관으로부터 자문이 있어, 연못에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련(白蓮)을 심도록 했다. 그래서 화가는 멀리 지방에까지 수소문을 하여 어렵사리 구해다가 심게 했다.
그 후 연이 잘 크는지 보기 위해 가보았더니, 아 이 무슨 변고인가, 연은 어디로 가고 빈 못만 덩그러니 있더라는 것.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 빈 연못으로 있는지 그 까닭을 알아보았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인위적인 제거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안내판에는 '백련못'이라고 똑똑히 써 있었는데, 8천 평 가까운 그 백련못에 연은 한 포기도 없었다.
이런 현상은 독립기념관만이 아니고 경복궁과 창덕궁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연꽃철이 되어 혹시나 해서 어제 빗길을 무릅쓰고 경복궁과 창덕궁의 비원을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경복궁 서북쪽에 큰 연못이 있어 나는 서울 근교에 살 때 연꽃을 보러 일부러 찾아간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거기 연못 속에 향원정(香遠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송대(宋代)의 한 학자가 연꽃을 기린글(애련설:愛蓮設)에서 따온 이름으로, 연꽃 향기가 멀리 은은히 풍겨 온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연못에는 연꽃도 그 향기도 자취 없이 비단잉어 떼의 비린내만 풍기고 있었다. 경회루 연못도 마찬가지였다.
비원에는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芙容)에서 따 온 부용정(芙容亭)과 부용지(芙容池)가 있지만 역시 연꽃은 볼 수 없었다. 불교에 대한 박해가 말할 수 없이 심했던 조선왕조 때 심어서 가꾸어 온 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뽑혀 나간 이 연꽃의 수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꽃에게 물어보라.
꽃이 어떤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
불교 경전에서 연꽃을 비유로 드는 것은 어지럽고 흐린 세상에 살면서도 거기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다. 불교 신자들은 연꽃보다 오히려 백합이나 장미꽃을 더 많이 불전에 공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신문에 이 기사가 나가자 청와대측에서는 진상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는데. 연못에 있는 비단잉어가 다 뜯어먹은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했다. 대통령께서 일부러 필자인 내게 사람을 보내와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처럼 연못을 가꾸어 놓으라고 지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여부를 나는 확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물고기는 사람들처럼 자기네의 먹이를 씨까지 말려 가면서 한꺼번에 모조리 뜯어먹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전주 덕진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살지만 연꽃은 무성하다.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풀과 나무는 다들 자기 나름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웃을 닮으려 하지 않고 패랭이는 패랭이답게, 싸리는 싸리답게 그 자신의 삶을 꽃피우고 있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은 어떤 형태로건 저마다 삶의 가장 내밀한 속뜰을, 꽃으로 피워 보이고 있다. 그래서야 그 꽃자리에 이 다음 생으로 이어질 열매를 맺는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고달프고 팍팍한 나날에 만약 꽃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꽃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곱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우리 이웃이다.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조화를, 거칠고 메말라가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이 열어 보이면서 깨우쳐주는 고마운 존재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밥주머니를 채우는 먹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때로는 밥 한 그릇보다 꽃 한 송이가 더 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위장을 채우는 일과 마음에 위로를 받는 일은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중요한 몫이다.
그런데 이렇듯 아름답고 향기롭고 조촐한 꽃이 어떤 과시나 과소비로 전락된다면,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꽃에 대한 모독이요 고문이다. 단 몇 시간을 치장하기 위해 그 많은 꽃들을 꺾어다 늘어놓는 일은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할지라도 꽃다운 일이 못 된다. 장례식을 비롯하여 행사장에 무더기 무더기로 동원되어 시들어 가는 꽃들을 대할 때마다 탐욕스럽기까지 한 인간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실망과 거부반응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무고한 꽃들을 괴롭히지 말 일이다.과시와 허세와 탐욕으로 여리고 사랑스런 꽃을 짓밟지 말 일이다.
7월은 연꽃이 피는 계절, 엊그제 전주 덕진공원에 가서 연꽃을 보고 왔다. 해마다 7월 중순이면 마음먹고 덕진에 가서 한나절 연못가를 어정거리면서 연꽃과 놀다가 오는 것이 내게는 연중행사처럼 되어 있다.
장마철이라 그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다른 구경꾼도 없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연못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서 연꽃만이 지닌 신비스런 향기를 들으면서(맡는다는 표현은 좀 동물적이니까) 연잎에 구르는 빗방울을 한참 지켜보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방울도 연잎에서는 겨우 좁쌀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함께 일렁이다가 얼마만큼 고이면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리는데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아하!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연꽃을 제대로 보고 그 신비스런 향기를 들으려면 이슬이 걷히기 전 이른 아침이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독립기념관에 들어 보았다. 한 가지 일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존경하는 원로화가로 부터 작년(1992년)에 들은 말인데, 나는 그때의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 정원에 대해서 관계 기관으로부터 자문이 있어, 연못에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련(白蓮)을 심도록 했다. 그래서 화가는 멀리 지방에까지 수소문을 하여 어렵사리 구해다가 심게 했다.
그 후 연이 잘 크는지 보기 위해 가보았더니, 아 이 무슨 변고인가, 연은 어디로 가고 빈 못만 덩그러니 있더라는 것.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 빈 연못으로 있는지 그 까닭을 알아보았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인위적인 제거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안내판에는 '백련못'이라고 똑똑히 써 있었는데, 8천 평 가까운 그 백련못에 연은 한 포기도 없었다.
이런 현상은 독립기념관만이 아니고 경복궁과 창덕궁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연꽃철이 되어 혹시나 해서 어제 빗길을 무릅쓰고 경복궁과 창덕궁의 비원을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경복궁 서북쪽에 큰 연못이 있어 나는 서울 근교에 살 때 연꽃을 보러 일부러 찾아간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거기 연못 속에 향원정(香遠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송대(宋代)의 한 학자가 연꽃을 기린글(애련설:愛蓮設)에서 따온 이름으로, 연꽃 향기가 멀리 은은히 풍겨 온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연못에는 연꽃도 그 향기도 자취 없이 비단잉어 떼의 비린내만 풍기고 있었다. 경회루 연못도 마찬가지였다.
비원에는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芙容)에서 따 온 부용정(芙容亭)과 부용지(芙容池)가 있지만 역시 연꽃은 볼 수 없었다. 불교에 대한 박해가 말할 수 없이 심했던 조선왕조 때 심어서 가꾸어 온 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뽑혀 나간 이 연꽃의 수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꽃에게 물어보라.
꽃이 어떤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
불교 경전에서 연꽃을 비유로 드는 것은 어지럽고 흐린 세상에 살면서도 거기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다. 불교 신자들은 연꽃보다 오히려 백합이나 장미꽃을 더 많이 불전에 공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93.7.25
[後記]신문에 이 기사가 나가자 청와대측에서는 진상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는데. 연못에 있는 비단잉어가 다 뜯어먹은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했다. 대통령께서 일부러 필자인 내게 사람을 보내와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처럼 연못을 가꾸어 놓으라고 지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여부를 나는 확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물고기는 사람들처럼 자기네의 먹이를 씨까지 말려 가면서 한꺼번에 모조리 뜯어먹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전주 덕진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살지만 연꽃은 무성하다.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2015.10.27 (10:35:31)
圓成
(175.194.1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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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훌쩍 지난 뒤에야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봅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행동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정년 후 새롭게 찾았던 직장을 과감하게 버리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오니 자유롭고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법정스님의 글을 한꺼번에 읽고 즐거움을 느낍니다.
오작교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