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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가지라

오작교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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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지대가 높은 이곳 두메산골은 청랭한 대기 속에 가을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붉나무가 붉게 물들고 개울가에는 용담이 말쑥하게 보랏빛 꽃을 머금고 있다. 산자락에도 들국화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오른다. 설렁설렁 불어오는 가을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사는 일이 조금은 적막하고 허허롭게 여겨질 때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그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고독한 존재다. 이런 인생의 실상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정신 공간을 찾는 일이 삶의 지혜가 될 것이다.

   지난 봄 오두막 뒤꼍에 산자두꽃이 눈부신 장관을 이루더니, 여름철에는 그 열매가 주렁주렁 가지마다 실하게 열렸다. 이따금 폭풍우가 불어 닥칠 때면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찢겨 나갔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지닌 것이 너무 많으면 비바람이(자연의 질서가) 그 나무의 생존을 거들기 위해 가지를 쳐 주는가 싶었다.

   가끔 장에 내려가는 김에 묵은 신문을 들추어보는데, 공직자재산 공개에 따른 뒷소식을 대하면서 어마어마한 그 소유의 단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개인의 소유란 원천적으로 그 개인의 차지로만 그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소유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공유물을 개인이 한 때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또 살 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밭 한 뙈기 동전 한 닢이라도 가지고 가는 사람 보았는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 삶의 실상이다.

   이 세상의 공유물이기 때문에 한때 자신에게 맡겨진 선물로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 선물을 올바르게 선용하면 관리 기간이 연장될 수 있지만, 묵혀 두거나 잘못 오용하면 이내 회수되고 마는 것이 우주의 질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문민시대의 사정 정국이 아니라도 이런 질서는 인류사회에서 염연히 존재해 오고 있다.

   사실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소유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람마다 그 그릇이 있는데, 그릇이 차면 넘치게 마련이다. 그 그릇을 나는 덕德이라고 말하고 싶다. 옛말에도 있듯이 덕은 반드시 이웃을 거느린다. 사람은 근원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를 지니지 않고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닥 해서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가질 때, 즐거움과 고통을 분담할 때 우리는 이웃이 된다.

   자신이 지닌 것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무연無緣한 타인끼리도 가까운 이웃이 된다. 부패의 병균은 그 시대의 공기 속에 들어 있다. 지난 1980년대에 땅 투기는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돌림병처럼 성행했었다.

   국민이 선택하지 않은 정권 아래서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동분서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재산 공개 공직자 1천167명과 그 가족의 등록된 토지만도 자그마치 1천5백만 평, 1인당 평균 1만 2천 평에 이른다니 이러고도 떳떳한 공직자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부정과 부패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청렴결백하게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온 공직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웃으로부터 무능력자로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분수를 지켜 온 그들의 있음이, 이 땅의 공직사회를 지탱하고 앞으로도 또한 그렇게 이어 나갈 것이다. 자기 자신 앞에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만이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갈 수 있다.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해서 모든 재산 때문에 물러나는 공직자들은 미련 없이 그 재산을 사회에 되돌려 주는 것이, 소유의 집착과 그 멍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한다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소리일까. 누에가 자신이 뽑아낸 고치에 갇히듯이, 자기 자신이 끌어 모은 획득물 속에 갇혀 남의 눈치나 보면서 살아간다면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러가는 사람들을 두고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야 한다. 허물만 들추어내어 규탄할 게 아니라 공적도 인정해 줄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도 우리 시대의 이웃이고 동반자이며 희생자다.

   행복의 비결은 우선 자기 자신으로부터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일에 있다. 사람이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 크게 나누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려면 자기를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을 멍들게 하는 분수 밖의 소유옥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소유의 좁은 골방에 갇혀 드넓은 정신세계를 보지 못한다.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라더니 요즘 새삼스레 떠오르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분수를 알고 투철한 자기 질서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일 것이다. 어쨌든 가진 것이 많으면 걱정 근심도 많게 마련이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적게 가지면 걱정 근심도 적다.

   가난한 이웃이 많은 우리 처지에서 적게 가지고 어디에도 꿀릴 것 없이 홀가분하게 살자. 이 또한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다.
 
93.9. 19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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