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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무소유(無所有)의 달

오작교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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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자연의 신비에 싸여 지혜롭게 살았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 둘레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하여 그 달의 명칭을 정했다. 그들은 외부의 현상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눈을 잃지 않았다. 한해를 마감하는 달 12월을 ‘침묵하는 달’ ‘무소유의 달’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산길을 터벅터벅 걷노라면 12월이 침묵과 무소유의 달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한동안 지녔던 잎과 열매들을 말끔히 떨쳐 버리고, 차가운 겨울하늘 아래 빈 몸으로 의연히 서있는 나무들은 침묵과 무소유의 의미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남는 것은 피곤뿐인데, 나무들과 함께 있으면 잔잔한 기쁨과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낀다. 식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을 사람이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물은 우주에 뿌리를 내린 감정이 있는 생명체다.

   그것들은 동물인 인간에게 유익한 에너지를 끝없이 발산해 주고 있다. 숲의 신비를 터득하고 살았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기운이 달리면 숲으로 들어가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소나무에 등을 기대어 그 기운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보면 깜짝깜짝 놀랐던 사건과 사고로 잇따른 씁쓸하고 우울한 기억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한 세월이 그렇게 엮어진 것이다. 이 세상 만물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안 보이는 상태로 존재한다. 이를 공의 세계라고 한다. 있는 것은 없는 것에 의해서 유지 존속되고 앞과 뒤는 서로 뒤따르면서 이어간다. 밝은 대낮은 어두운 밤이 그 배후에서 받쳐주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또한 밤은 낮이 없으면 그 장막을 펼칠 수 없다. 이것이 우주의 리듬이요 음양의 조화다.

   우리의 생각이나 언어 동작은 우리 정신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그것은 마음에 뿌려진 씨앗과 같아서 나중에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게 된다.

   우리들의 모든 생각은 우주에서 영원히 진동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어두운 생각 속에 갇혀서 살면 그 사람의 삶이 어두워지고 밝은 생각을 지니게 되면 그 삶에 햇살이 퍼진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낱낱이 그 예를 들출 것도 없이, 깜짝깜짝 놀랄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서민들의 심장은 그야말로 콩알만 해졌을 것이다. 또 어디서 무슨 사고나 사건이 터지지 않을지 노상 불안한 마음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도 있듯이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위는 씨가 되고 업이 되어 그에 걸맞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인과관계의 고리다. 현 정부에서는 전에 없이 이른바 ‘깜짝쇼’를 즐겨 연출하기 때문에 깜짝깜짝 놀랄 일이 뒤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통치자의 고유권한에 참견할 바는 아니로되, 우리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기쁨과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는 한 국민의 처지에서 진언이 허락된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깜짝쇼」라는 말이 최고통치 권자의 주변에서 사라졌으면 한다. 무고한 국민들에게 더 이상 충격을 주지 말았으면 한다. 그 어떤 아름다운 문구를 쓴다 할지라도 말은, 특히 정치적인 말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진실은 오히려 침묵을 통해서 전달될 수 있다. 그 침묵 속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 존재의 바탕인 침묵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어떤 사람이 성당에 가서 한 시간이 넘도록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신부가 다가가서 물었다.

   “선생께서는 하늘에 계신 그분께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냥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럼 그분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그분 역시 가만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지만 영혼의 침묵 속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듣기 좋은 말로 할 뿐이다. 기독교식의 말, 불교식의 말, 힌두교식의 말, 회교식의 말 등등.

   그러나 진실한 기도는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원초적인 침묵으로 이루어진다. 말씀이 있기 전에 침묵이 있었다.

   한해를 청산하는 이 침묵과 무소유의 달에 종파적인 신앙을 떠나 우리 모두가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침묵의 기도를 올렸으면 한다. 우리 곁에서 온갖 재앙이 사라지고 이 땅에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복된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94. 12. 17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2016.01.17 (17:46:05)
수혜안나
 
 
 

침묵은 깊어질 수록 내면의 흐름이 울림으로 울려와

그 흐름따라 삶이 인도되는 것 같습니다.

 

잠시 머물어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신 정성을 기억하면서

영육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봅니다.

베품과 나눔에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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