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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겹고 멋진 음악처럼

오작교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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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얼어붙은 개울에서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다가 장작난로 위에 물통을 올려 놓으니 물방울 튀기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뜨겁고 차가운 것끼리 서로 부딪치며 밀어내는 소리지요. 한 집안이나 일터에서도 구성원들끼리 성격과 취향이 맞지 않으면 이런 마찰이 있겠구나 싶습니다.

   혼자서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갈등과 마찰에서 벗어나 있음을 다행하고 고맙게 여길 법도 한데, 평소에는 이런저런 분별없이 본래부터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무심히 지냅니다. 그러다가 여럿이 모여 사는 곳에서 시시콜콜 한 시비와 갈등이 이는 것을 보게 되면, 이전에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 되돌아 보입니다. 그리고 무리로 부터 떨어져 나온 것을 다행하고 고맙게 여깁니다.

   난롯가에 앉아 돋보기를 걸치고 신기료장수처럼 해진 옷가지를 꿰매고 있자니, 내 처지가 문득 '산울림 영감'처럼 여겨졌습니다. 심심산골에서 바위에 앉아 이나 잡으면서 홀로 산다는 그 산울림 영감 말이지요.

   사람의 생각이나 말은 그것이 씨가 되어 훗날 그 생각과 말대로 되기 십상입니다. 지금 이런 오두막의 내 삶은,돌아보니 30여 년 전부터 생각과 말로 꿈꾸어 오던 그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 무렵 나는 청마靑馬의 <심산深山>이란 시를 애송하고 있었습니다.
 
심심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현재 우리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한 생각이나 입에 담는 말, 그리고 몸으로 하는 행동은 지금 한때로 그치지 않고 이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결단한 의지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요.

   지난 11월 하순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모임에서 주관한 자선 음악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낀 바를 이야기합니다. 요즘에 와서 나는 음악회 같은 데에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일부러 먼길을 찾아 나서기가 그렇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섞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땅의 정치도 음악처럼 흥겹고 멋지게 할 수는 없을까. 관객들의 박수와 갈채를 받는 연주자처럼, 온 국민의 환호와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멋진 정치인은 없을까. 그런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다스려야 우리도 당당한 세계 시민으로서 국제사회에서 기가 죽지 않을 텐데.......

   현 정부는 국정의 제일목표로 세계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문민정부 출범 이래 우리 나라는 온갖 대형 사고와 사견으로 깜짝깜짝 놀랄 빅뉴스만을 세계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야끼리 지겹도록 서로 물고 뜯는 싸움과 정치 부재의 혼미가 무고한 국민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부담을 안겨 주고 있습니까.

   좋은 음악회는 연주자나 지휘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청중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일체감을 지닐 때 비로소 좋은 음악회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연주자와 청중이 호흡이 맞지 않아 물위에 기름 돌듯이 한다면 결코 좋은 음악이 창조될 수 없습니다.

   정치인과 국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불성실하고 정직하지 못한 질이 낮은 정치꾼들을 이 땅의 정치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무엇보다도 유권자인 국민이 맑은 의식을 지니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말보다도, 그 행동을 주시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지역적인 감정 때문에 무조건 거부하거나 감싸고돈다면 결과적으로 나라를 멍들게 하고 우리 모두에게 피해를 가져옵니다.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청중 앞에 엉터리 연주자가 함부로 나설 수 없듯이, 도덕성과 역사의식이 결여된 정치인들도 깨어 있는 국민 앞에는 감히 나설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보면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거문고의 명수인 백아(伯牙)와 그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친구 종자기(鍾子期) 사이의 지음지교(知音之敎)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높은 산을 오르는 데 뜻을 두자 종자기는 말합니다.

   "훌륭하도다. 높이 솟아오름이 마치 태산과 같구나!"

   흐르는 물에 뜻을 두자 다시 종자기는 말합니다.

   "훌륭하도다. 넘실넘실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 같구나!"

   종자기는 백아가 생각하는 것을 환히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아가 태산의 북쪽으로 놀러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해 바위 아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슬퍼져 곧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장맛비의 곡조를 타다가 나중에는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곡조를 연주할 때마다 종자기는 곧 그 뜻한 바를 알아내었습니다. 그러자 백아는 거문고를 내던지고 말합니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그대의 들음이여! 내 뜻을 알아냄이 마치 내 마음과도 같구나. 내 거문고 소리는 그대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네."

   훗날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이해해 주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세상에 자기 음악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음을 통곡했다고 <여씨 춘추(呂氏春秋)>는 전합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를 가진 사람은 그 삶이 든든할 것입니다. 같은 <열자>에 진秦나라의 유명한 가인歌人 이야기가 나옵니다. 설담이란 사람이 스승 밑에서 끝까지 배우지 않은 채 스스로는 다 배웠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스승은 굳이 말리지 않고 갈림길까지 바래다주면서 악기를 어루만지며 이별의 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랫소리가 숲과 나무를 뒤흔들고 그 울림은 지나가는 구름까지 이르렀습니다. 설담은 곧 사과하고 그 후로는 평생토록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승은 어느 날 그의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옛날 한(漢)나라의 가인 한아(韓娥)가 동쪽으로 제齊나라에 갔다가 식량이 떨어진 일이 있었소, 도성의 서쪽 문을 지날 때 노래를 팔아 밥을 빌어서 먹었는데, 그가 떠나간 뒤에도 소리가 남아 기둥과 들보에 맴돌며서 사흘 동안이나 끊이지 않았다오. 그래서 곁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떠나가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줄 알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여관에 들렀는데, 여관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욕보였다오. 그러자 한아는 소리를 길게 뽑으며 슬피 울었는데 십 리 안에 있던 노인으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함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흘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로 인해서 도성 서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노래와 곡(哭)을 잘하는데, 그것은 한아가 남긴 소리를 본뜬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인이 부른 노래의 여음이 그가 떠나간 후에도 기둥과 들보에 맴돌면서 사흘 동안이나 끊이지 않았더니, 그리고 그가 부른 노래가 십 리 안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같이 감동시켜 사흘이나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게 했다니, 그는 참으로 인류 연가에 기억할 만한 훌륭한 가인입니다.

   저 암울했던 우리 시대의 두 전직 대통령이 부정 축재와 반란수괴죄로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면서, 착잡하고 참담한 시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가 되어야 온 국민이 흠모하며 존경하는 국가 원수를 맞이하게 될까요? 정치를 흥겹고 멋진 음악처럼 할 수는 없을까요?
 
<96 . 1>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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