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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질서

오작교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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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영혼의 母音

   밤거리에서 빈 차의 표시등을 켜고 지나가는 택시를 보면 괜히 반가울 때가 있다. 택시를 잡아타기에 애를 먹은 사람이면 거의 공통된 느낌일 것이다. 항상 시계의 장단점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시속(時速)에서 생의 밀도 같은 것을 의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느냐를 대변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해서, 돈으로 시간을 산다. ‘시간은 한국은행권이다’라는 고전적인 말에 새삼 실감을 느끼게 된다.

   마이 카가 없는 백성들이 돈으로 시간을 사려면 부득이 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택시를 타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정류장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깔아버리는 시간은 정말 사주팔자에도 없는 피해다. 이때껏 기다리던 일이 억울해서 그 자리를 선뜻 못 떠나고 있다.

   정류장이란 게 밝은 낮에나 겨우 체면을 차리지 어둠이 내리면 열띤 생존경쟁의 싸움터로 탈을 바꾼다. 밤의 택시 정류장은 마치 생활능력의 시험장 같다. 오늘날 서울특별시민으로서의 생활능력을 재보려면, 그의 허세나 예금 잔액보다도 밤의 택시를 잡게 해보았을 때 순수하게 평가될 것이다.

   며칠 전 짐이 있어 차례를 기다리며 그 정류장이란 곳에서 서성거렸었다. 분명히 내가 탈 차례인데도 날쌘 용사들에게 번번이 가로챔을 당했다. 밤의 세운상가 앞에서는 질서라는 의상이 없다. 반 시간 넘게 기다리다 지쳐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기 위해 5가 쪽으로 발길을 옮겨 놓았다. 그때 뜻밖에 내 곁에 와 멎는 택시가 있었다. 양손에 무건운 짐을 내려놓으니 우선 살 것 같았다.

   타고 가면서 고마운 운전사에게 물었다. 왜 뒤쪽에서 세우지 않고 나를 태웠느냐고.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기는 불교 신자도 기독교 신자도 아니지만 얼마 전부터 하루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나를 보고 다른 손님 앞을 지나 차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도 잘 안되는군요”

   라고 하는 걸걸한 운전사의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적잖이 감동했었다.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남한테는 곧잘 나발을 불어대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낮의 위선이 그 정체를 드러내는 밤의 혼돈 속에서 포근한 질서 같은 것을 감촉할 수 있었다.
 

1970. 5. 9

글출처 : 영혼의 母音(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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