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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외독서

오작교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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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영혼의 母音
   지난해 가을, 그러니까 천고마비(天高馬肥)하고 등하가친(燈下可親) 한다는 그 독서의 계절에 나는 몇몇 대학의 법회에 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실례를 전제하면서, 요즘 동화를 읽고 있는 이가 있으면 손 좀 들어주겠습니까? 하고 알아보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동화를 읽은 학생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도 타진해 보았으나 한결같이 안 읽는다는 것이다.

   하기야 동화를 읽을 만한 여가가 없을지도 모른다. 주간지나 베스트 셀러만을 골라 읽느라고 동화 같은 것은 아예 거들떠볼 것도 없다는 것인가. 그리고 어린이들이나 읽을 그런 싱거운 것을 뭣 하러 읽겠느냐는 표정들이었다.

   물론 동화는 아동문학의 한 부문이다. 어린이를 상대로 동심을 기조로 해서 씌여진 이야기이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사실적이기보다는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물감으로 충만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가 꼭 어린이들만의 차지이고 성인들은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일까.

   각박한 현실 속에서 늘 쫓고 쫓기면서 살아야 하는 성인들일수록 오히려 환상과 서정의 영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꿈이 없는 사람은 무표정한 기계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나 울음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환상적인 여유를 빼앗기고 있는 현대 문명인들은 꽃을 가꿀 화단마저 잃고 있다.

   어느 날 예외자가 한 사람 찾아왔었다. 대학을 나와 집안일을 거들고 있다는 그는 그 물음에 빙그레 웃었다. 그는 예외자였다. 그가 동화를 즐겨 읽는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의 눈매는 맑았고 목소리는 투명했다.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여백을 지닌 그의 내면의 세계가 번져 나오기 때문인가. 이런 것을 가리켜 친화력(親和力)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상호 간의 신뢰는 이러한 친화력에 의해 맺어져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불신사회의 요인은 친화력의 결핍에 있을 것이다. 격돌과 불신으로 맞서기를 잘하는 종교인이나 정치인들이 동화를 즐겨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어지간한 일쯤은 서로가 양보하는 미덕을 보일 것이다.

   군사력이 넘쳐서 주체 못 하는 비대한 국가의 원수들이, 그리고 호전적인 정치가들이 차디찬 통계 숫자 대신 아름다운 언어로 쓰인 동화를 읽는다면, 이 지상에는 화약 냄새가 덜 나게 될 것이다. 현재인들은 자유와 독립만을 구가한 나머지 아름다움을 까맣게 잊어버리려고 한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저 바닷가에 도시를 하나 세운다면, 나는 그 바닷가 한 섬에다 자유의 신상을 세우지 않고 미의 신상을 세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의 발밑에서는 항상 맞붙어 싸울 일밖에 없지만, 아름다움의 얼굴 앞에서는 모든 사람은 서로서로 형제같이 손을 마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화는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이다. 동화는 자유의 여신상 쪽이 아니라 미의 여신상 곁에 자를 잡는다.

   예외자인 그가 나를 찾아왔던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방안은 썰렁해 오들오들 떨다가 갔다. 며칠 뒤 그는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 몇 년 후가 될지 아니면 내생이 될지 모르지만, 제가 돈을 벌 수 있을 때 제일 먼저 스님께 석유난로를 사드리겠습니다.>

   이 사연으로 해서 우리 방은 겨우내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었다.

   내 가난한 서가에는 몇 권의 동화책이 꽂혀 있다. 경전이나 그 주석서에 못지않게 자주 펼쳐보는 것들이다.

   <어린 왕자>, <꽃씨와 태양>, <구멍 가겟집 세 남매> 등. 구중에서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손때가 배도록 자주 펼쳐본다.

   이 <어린 왕자>한테서는 바흐의 화음이 난다. 읽고 나면 숙연해진다. 그 어떤 종교 서적에 못지않게 나를 흔들어 놓는다.

   어른과 아이들의 사유 경향에 대해서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그분들은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동무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채집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하는 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야 그 동무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며, 그분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내지를 못한다. 1억 원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거 참 굉장하구나!‘라고 감탄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물이 어린이들의 티 없는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린이를 가르치기 전에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동무를 찾아 나섰다가 여우 한 마리를 만나 서로 사귀게 된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 되니까. 그렇지만 친구를 팔아주는 장사꾼이란 없느니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어.’

   그러면서 친구가 갖고 싶거든 자기를 길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이런 비밀을 일러준다.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나의 과외 독서는 누워서 부담 없이 읽히는 동화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탁 트이는 그런 동화책이다.

   그것은 내 나날의 생활에서 시들지 않은 싱싱한 초원이다. 넘치는 우물이다.

1970. 4
글출처 : 영혼의 母音(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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