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시린 가을의 기도 ♠
    
    
    보잘 것 없는 
    열매 남기고 떠납니다 
    모진 바람 불 때면 아무도 모르게
    그만 쓰러지고도 싶었습니다.
    한 켠으로 내달렸던 마음, 
    부질없는 희망
    이제 접으려 합니다
    화려했던 웃음 조용히 거두고
    영원히 푸르겠다던 오기 
    땅 위에 나즈막히 떨구고
    너그러운 바람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 여름의 그 폭풍 같던 사랑
    추억의 여운만으로도 
    저는 이렇듯 빛나고 있습니다
    허나 어리석은 미련 
    갖지 않게 하소서
    찬란한 햇살에 욕심 
    부리지 않게 하소서
    행여 꽃 같은 님이라도
    쳐다 볼까 두려운 
    물기 잃은 얼굴입니다
    소풍 나왔던 이 세상
    황홀한 빛으로 목 놓아 적시다가
    어느 시린 가을 날,
    스산한 바람 한 점에 날아가듯 
    저물게 하소서
    돌아서는 뒷모습 
    애달프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