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 등 주옥 같은 소설로 유명한 우리
문학의 거목 황순원 선생. 선생은 그의 소설에서 느겨지듯 정
이 많았고 소박한 삶을 즐겼다.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그는 늘
자신의 옆에 술 한잔을 더 따라 두었다. 누군가 그 까닭울 묻
자 선생이 대답했다.

"친구 응서의 잔이라네. 오늘처럼 술을 마시면 그와 함께 술잔
을 비우던 때가 그립네그려." 먼저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는
그의 정겨운 마음은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울림을 남겼다.

선생의소박한 성품은 그가 세상을 따난 뒤, 아들 황동규 시인이
발표한 시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가족들에게 상자를 유산으
로 남겼다. 인생의 선배이자 문학의 스승인 아버지를 잃은 슬픔
에 황동규 시인은 한 달을 훌쩍 넘긴 뒤에야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런데 상자를 본 황동규 시인은 후두둑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상
자 속에는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던 포도주, 셔츠, 사진 등 아버지
의 청혐한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황동규 시인은 그런 아버
지를 추억하며 쓴 시 한편을 문학잡지 "현대문학"에 발표했다.

'부동산은 없고/ 아버지 유산으로 내리신 동산(動産) 상자 한 달
만에 풀어보니/ 마주앙 백포도주 5병,/ 호주산 적포도주 1병,/
안동소주 400cc 1병,/ 짐빔(jim beam) 반 병/ 품 좁은 가을꽃 무
늬 셔츠 하나,/ 잿빛 양말 4컬레,/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장..
."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