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연 12월 24일의 성공적인 흥남부두의 피난민 철수작전을....! !
우리국민들은 6.25전쟁의 긴박한 상황속에서
북한의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있었듣 10여만여명의 성공적인
피난민 대 철수작전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자유를 찾아 탈북하려는 10만여명의 피란민들을
12월25일 월드피스자유연합(이사장 안재철)이 부산역광장에서
“휴머니즘의 회상 : 흥남철수작전. 장진호전투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 전시는 6.25전쟁 당시인 흥남철수와 장진호전투 사진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원한 세계 67개국의 국기를 관람할 수 있다.
6.25전쟁 당시인 1950년 11월 27일 ~ 1950년 12월 24일,
한반도 북동부에서 있었던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을 기억하게 하는
이번 사진전은 2014년 1월 13일까지 진행되며,
당시에 북한피란민이 몰려온 부산진역 인근의 부산역광장에서 진행하여,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사진=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https://cfile212.uf.daum.net/image/275C464052BC1E891C69F7)
▲ 사진은 장진호전투 (1950년 11월 27일 ~ 1950년 12월 11일).
![](https://cfile229.uf.daum.net/image/2579114052BC1E890DA975)
▲ 사진은 장진호전투 (1950년 11월 27일 ~ 1950년 12월 11일).
![](https://cfile217.uf.daum.net/image/270B924052BC1E8A0A1D79)
▲ 사진은 장진호전투 (1950년 11월 27일 ~ 1950년 12월 11일).
![](https://cfile227.uf.daum.net/image/2470834052BC1E8A139F64)
![](https://cfile223.uf.daum.net/image/253FF94052BC1E8B1E8C73)
▲ 사진은 철수하는 장진호전투부대 (1950년 11월 27일 ~ 1950년 12월 11일)▼
![](https://cfile219.uf.daum.net/image/2579D04052BC1E8C0D6522)
![](https://cfile228.uf.daum.net/image/2612244052BC1E8C06BC63)
피란민들이 흥남부두로 몰려 오고 있다
![](https://cfile219.uf.daum.net/image/2316EB4652BC1E8D08BD8A)
피난민들을 수송하기 위해 수많은 군수물자를 하역 야적하고 있다(군수품은 부두 철수시 폭파시켜 사용불능케 했다)
![](https://cfile203.uf.daum.net/image/234C114652BC1E8D266149)
![](https://cfile232.uf.daum.net/image/25760E4652BC1E8E16CE1D)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유엔군들의 영결장면이다(이들은 고국으로 가지 못했을것이다)
![](https://cfile223.uf.daum.net/image/2623DE4652BC1E8E034AB8)
운 좋게 배에 승선한 피난민들(그들의 미래는 암담했다)
![](https://cfile220.uf.daum.net/image/241FA24652BC1E8F04F5F4)
운 좋게 배에 승선한 피난민들(그들의 미래는 암담했다)
![](https://cfile220.uf.daum.net/image/252B764652BC1E903B5106)
전선에서 용케 살아남은 유엔군들이 승선하기 위해 부두로 집결하고 있다
![](https://cfile209.uf.daum.net/image/270BB74652BC1E900D5B27)
피난민 철수를 위해 하역 야적한 군수물자와 부두시설을 폭파하고 있다
![](https://cfile221.uf.daum.net/image/27780C4652BC1E91163CC1)
자유를 갈망하며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피난민의 인파
![](https://cfile220.uf.daum.net/image/216EEA3E52BC1E9105DD7C)
두사람의 피난민이 필사적으로 그물사다리를 오르고 있다(오르다가 떨어 사망한 사람들 많았다고 함)
![](https://cfile205.uf.daum.net/image/242A663E52BC1E921C738D)
신속한 북진으로 통일의 부픈 꿈에 부플었던 유엔군은 예상치 못했던
100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진 유엔군은 38도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북동부 전선의 장진호전투에 참가한 미 해병 1사단, 미 육군 7사단
31연대전투단 병사들뿐 아니라 영국 해병 41특공대, 한국인 카투사 병사들과,
대한민국 경찰들은 중공군의 게리라전법에 의한 포위공격으로
험한 산악지역의 눈덮힌 포위망을 뚫고 철수하느라 막대한 병력의
손실과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자: 1950년 12월 9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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