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의미가 담긴 태극기

    마건충(馬建忠)이 제안한 태극도. 청(淸)나라 사신 마건충이 반홍, 반흑의 태극에 8쾌를 그려서 조선(朝鮮)의 국기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고종(高宗)이 크게 노하여 새로운 태극기를 창안하였다. 조선왕조 말기 정치인이었던 박정양(1841~1904)이 서장하던 태극기. 1884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그후 1900년 이화학당 4대 총장 쥬디씨가 똑같이 그려 사용하였고, 현재 스미스 소니언(Smith sonian)에서구입,소장(所藏)중이다.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1886년 외교 고문이었던 데니시(Deny, Owen N)가 재임시 고종황제(高宗皇帝)로부터 하사(下賜)받은 태극기이다. 데니씨는 당시 조선왕조를 간섭하던 청(淸)나라를 신랄하게 비난하였던 미국인 외교고문(顧問)이었다. 태극기의 특징은 통상약장 태극문양과 비슷하나 음방과 양방의 위치가 다르며 몸체가 가늘고 길다. 1900년 무렵의 태극기로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 되자 이를 단호히 저항하면서굳건히 항일운동을 펴자는 글이 태극기 양쪽에 새겨진 항일 독립운동 태극기이다. 일본이 이 태극기를 빼앗아 갔다가 1967년 반환하였으며 지금은 독립기념관에 소장(所藏)되어 있다. 1874년 청나라가 외국과 맺은 조약과 외국 사신의 서신 등을 기록해 놓은 청나라의 『통상장정(通尙章程)』에 나오는 태극기는 '대청속국, 고려국기'라 소개하면서 청국을 상징하는 노란색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표시하고, 괘의 색깔은 청색으로 표시하였는데, 청색은 대한 제국의 색깔을 의미한다. (고려대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돼있는 1898년의 [통상약장유찬(通商約章類纂)]이란 문헌에도 이와 같은 모양 1919년 평양 숭실 학교 태극기 : 삼일운동 이틀 전에 평양의 숭실학교 조만식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반드시 너의 손으로 태극기를 올려야 한다." 이 말씀에 따라 학생 김건이 동료들과 함께 제작하여 1919년 3월 1일 평양 숭실학교 교정에 이 태극기를 높이 내걸었다. 이 태극기는 이후 숭실학교의 마포삼열(모페트)학장 선생님이 몰래 1년 동안 보관하여 오다가 이후, 미국의 아들에게 보내어져 보관되다가 1974년 숭실대학교로 기증되었다. 광복군 이름이 새겨진 태극기 : 1945년 중국 방부에 있던 광복군이 광복에 대한 소감과 이름을 기록한 태극기. - 4괘의 배치는 이괘와 감괘의 위치가 지금과 바뀌어 있고, 태극 음양의 머리꼬리의 소용돌이도 바뀌어 있다.
    독립문의 태극기 - 자주 독립 국가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딴 독립문에는 태극기가 좌우 양편에 돌에 새겨져 있다. 이 태극기의 모양은 독립 신문의 태극기와 같다. 지금의 태극기와 비교해 보면 상하가 뒤집어 져 있는 모양이며, 음양 태극양의의 소용돌이가 매우 역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1900년대의 태극기 : 고종황제 시절 광무9년 정삼품 통정대부 벼슬을 지냈던 종로구 홍지동에 사는 박영민씨의 조부 박기준씨께서 사용하던 국기 제작연대 : 1900-1905년, 실물크기 : 정사각형 80cm 아마 박영효가 <메이지 마루>호 안에서 제작하여 일본에 게양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공식 태극기 모양이다. 이같은 사실은 1997년에 발견된 1882년 10월2일자 도쿄 일간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실린 태극기 제작배경기사로 알게 된 것이다. - 일명,'박영효의 태극기'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