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원기소


잘사는 친구 '원기소' 먹을 때 부러운 눈길만…

'우리는 젖 먹을 때부터 원기소! 발육촉진 식욕증진 병에 대한 저항력 강화에…. 발육기의 어린이들에겐 한두 가지 영양이 아니라 여러 가지 영양이 필요합니다. 특히 비타민에 있어선 어른의 38배(체중 1kg당)나 더 많이 필요합니다. 서울약품.' 1950~70년대 대표적인 어린이 영양제 원기소는 성인용도 있었다. 특히 여성을 공략하려는 광고가 인상적이다.

'원기소를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하시면, 풍부한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 성분들이 골고루 보급되어 위장에 근본적인 활력을 줌으로써 아름다운 건강미를 창조하여 줍니다. 단기 4292년(1959).' '3000만의 영양소화제'를 표방하며 '허약하신 분 입맛 없으신 분 피로하기 쉬운 분 위장 나쁘신 분'을 폭넓게 공략했던 삼일제약의 에비오제도 있었다. 일동제약 비오비타는 또 어떤가?

'깨끗한 위장에 튼튼한 몸! 소화 정장을 겸한 유산균영양제 비오비타. 어린이 건강은 엄마의 책임입니다.' 방송인 강호동을 방불케하는 몸매의 아기 둘이 '고추' 드러내놓은 광고의 문구다. 정부가 국산 약품 보호를 위해 완제품 약제 수입을 규제하면서 건강 영양 약품 개발 및 출시가 성황을 이루었지만, 형편 어려운 집에서 아이들에게 원기소 챙겨 먹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잣집 친구들이 원기소 먹는 걸 부러워했다는 40대 중반 이상 세대가 많다.

최영미 소설 '흉터와 무늬'의 한 대목. "서가가 천장까지 올라간 문간방을 지나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응접실, 연필 깎는 기계와 고소한 원기소가 책상 위에 놓인 공부방에 이르도록 내가 맡은 건 부와 사치의 냄새가 아니었던가." 그래도 안도현 시인의 어머니는 원기소를 늘 챙겨주셨다. "아들이 귀한 집이라 그래도 니 사촌 홍기하고 니는 없는 살림에도 원기소를 늘상 사다 먹였지." (산문집 '사진첩') 조경란 소설 '가족의 기원'에서도 원기소는 어머니와 불가분이다. "아버지가 그 먼 나라에 가 있는 동안 엄마는 춤바람 한 번 나지 않았다. 계와 적금으로 돈을 굴리고 우리들에게 수제비와 밀가루빵을 구워 먹이고 하루에 세 알씩 원기소를 먹였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원기소 한 알을 꺼내 씹으면 고소한 건지 구수한 건지 특유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면서 손은 절로 다시 통 속이다. 어머니의 원기소 배급제 원칙을 위반하며 몰래 여러 알 꺼내 친구들과 함께 씹어 먹는 맛은 더욱 좋았다. 원기소의 약효가 있었다면 그 절반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모정(母情)에서 나왔으리라. 괜한 궁금증 하나. 시인 김정환은 서평을 통해 문학평론가 황종연이 어릴 적 원기소 모델이었다고 폭로했다. 그 진실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박정식-천년바위

출처 : 조선일보 200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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