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비공개 사진들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2004 NARA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2004 NARA



▲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2004 NARA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2004 NARA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2004 NARA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2004 NARA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2004 NARA



▲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2004 NARA



▲ 1950. 8. 15. 피난민 행렬ⓒ2004 NARA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2004 N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