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가 내리면서 숲에는 안개가 자욱이 서려 있는데, 아까부터 저 아래 골짜기에서는 이따금 인기척에 실려 땅을 파는 괭이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내리는 이런 날에 누가 아서 무엇을 하는지 마음이 쓰여 털레털레 내려가 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두 아주머니가 비에 젖은 채 무슨 나무뿌리를 캐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산 너머 오미실 마을에 사는데, 내일이 30리 밖에 있는 광천 장날이라 약초를 캐러 왔다는 것. 그것을 팔아 소용되는 물건을 사오기 위해서다. 봄에는 고사리와 산나물을 뜯고 더덕을 캐며, 가을에는 도토리를 주워서 묵을 만들어 장에 내놓는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산죽(山竹)을 베어다 팔기도 한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도 가난한 살림에 보태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해냐 하니, 세상은 참으로 고르지 않구나 싶었다. 그 약뿌리라는 걸 내다 팔아야 얼마나 받을까. 도시의 같은 또래 여인들이 양껏들 흉내를 내어 손톱에 바르고 눈가에 칠하는 그런 물감 하나 살 만한 값에도 못 미칠 것은 뻔하다. 비에 젖은 머리와 옷을 보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함께 올라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떡국을 끓여 먹었다.

    아주머니들이 돌아간 후, 참선을 한답시고 따뜻한 아랫목 푹신한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오늘만은 너무도 미안하고 허황하게 느껴졌다. 물론 사람 사는 일이 똑같을 수야 없지만, 그리고 이런 불공평한 가난을 오늘 비로소 안 것도 아니지만, 그 아주머니들을 보고 나니 여러 가지로 자책(自責)이 뒤따랐다.

    오늘날 물질만능과 거대주의(巨大主義)는 인간의 정신을 비키고 가꾼다는 종교계에까지도 두루 휩쓸고 있다. 여기저기서 때를 만났다는 듯이 앞을 다투어 우뚝우뚝 치솟고 있는 수십 억, 수백 억짜리 교회와 울긋불긋 호사스럽게 세워지는 절들을 보라. 이렇듯 거창하고 호사스러운 건물에서 과연 인간의 정신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일찍이 예수나 석가가 이런 호화찬란한 ‘중전’에서 살기를 원했단 말인가.

    집의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거룩한 교회와 큰 절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상업주의와 허세에 물들지 않은 진정한 신앙인들인지 아닌지, 참으로 발심한 수행자들인지 아닌지에 따라 거룩한 교회나 큰 절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허울 좋은 장사꾼의 장터로 전락될 수도 있다.

    옛날 분양의 선소나 악산의 유업 같은 고승의 회상(會上)에는 모인 대중들이 겨우 7, 8인에 지나지 않았고, 조주선사 문하에도 10인을 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회상을 가리켜 대총림(큰 수도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눈 푸른 수행자들로서 그 시대에 한몫씩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진정한 종교는 동서고름의 역사를 들출 것도 없이 떠들썩한 외적(外的)인 확산보단ㄴ 조용하고 착실한 내적(內的)인 응집(凝集)을 높이 샀다. 그 결과 일반의 신망과 귀의를 얻어 건전한 발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어떤 선사는 다 퇴락한 절에 살면서도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서까래가 부러지고 벽이 갈라져 선실(禪室)에까지 비바람이 들이쳤다. 겨울철에는 갈라진 벽 틈으로 눈보라가 날아들어 선사의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실정이었으므로 젊은 스님들은 선실을 개축하고자 여러 차례 제언했지만 선사는 그때마다 물리쳤다.
“예전의 수행자들은 나무 밑이나 바위굴 속 맨땅에 앉아서 수행을 했다. 그래도 오늘 우리들은 비록 낡은 집이지만 방안에 들어앉아 정진할 수 있지 않은가. 인생은 덧없는 존재, 수행할 수 있는 기간이래야 기껏 삼사십 년. 그러니 어찌 새집을 짓기 위해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보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들은 흩어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문하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은 집을 보고 모여든 게 아니라 선사의 간절한 구도정신과 덕화(德化)를 우러러 찾아든 것이다.

    세상에서도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간소한 집에 살려고 한다.

    그런데 명색 수도와 고화의 업을 닦는다는 사람들이 어찌 고대광실에 살기를 바랄 것인가. 분수 밖의 호화스런 집을 가진 사람치고 그릇된 생활을 하지 않는 자 드물다.

    건물이 있기 전에 먼저 청정한 믿음과 수행(修行)이 있었다. 바른 믿음과 수행이 있으면 언젠가 건물은 세워지게 마련.

    모든 종교적인 집회에 있어서 그 알맹이는 깨어 있는 맑은 혼이다. 이런 알맹이가 없는 교회와 절은 혼이 나가버린 시가(時價) 얼마짜리의 싸늘한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선승 영우는 백장 선사로부터 개안(開眼)의 인가를 받은 후 곧 위산의 험준한 산중으로 들어간다. 손수 나무를 베고 흙을 이겨 간소한 초암(艸庵)을 짓고 새와 짐승들을 벗 삼아 청빈(淸貧) 속에서 열심히 수행한다. 채소를 가꾸고 도토리와 밤을 주워다 먹으면서 주림을 달랬다. 법당도 없고 재물도 없고 따르는 신자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다만 자신의 한결같은 수행뿐. 이렇게 30여 년을 지냈다.

    그 후 그의 덕화(德化)가 세상에 알려지자 뛰어난 수행자들이 모여 큰 수도원을 이룬다. 이때 비로소 조촐한 절이 세워졌다.

    이와 같이 절이 세워지기 전에 진실한 수행이 먼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둘레에는 절과 교회는 여기저기 많아도 진실한 수행과 믿음은 보기 드물다. 예전에 비하면 먹고 입는 것과 거처가 얼마나 넉넉하고 편리해졌는가. 그럼에도 의인(義人)과 눈 밝은 사람은 귀하다.

    출가 수행자의 본분인 수행과 교화에는 등한하면서, 사람이 귀한 집안에서 사람은 길러내지 않으면서, 사원의 건물만은 거창하게 짓고 치장을 한다. 이것은 불교를 위해서도 진리를 위해서도 아니다. 사원을 관리 운영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명예와 이익을 위한 소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새로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불상을 조성하고 몇 천 관짜리 종(鐘)을 만드는 일을 가지고 마치 불교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수십억을 들여 웅장한 절을 짓고 눈부시게 꾸민다 할지라도 그것은 종교의 본분이 아니다. 비록 허물어져가는 오막살이에 살지라도 깨어 있는 혼으로 발심 수행하고 올바르게 교화한다면, 그때 비로소 이 땅에 불교는 새롭게 움이 틀 것이다.

    우리들 자신의 내적인 성전(聖殿)과 법당이 허물어져가는 이 판국에 어디에 또 다른 성전과 법당을 더 세우겠다는 것인가. 국민소득이 늘고 생활수준이 구미 선진제의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다하더라도 지금 우리 이웃에는 절대 빈곤의 계층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빈곤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선진조국’의 길도 결코 순탄치 않다. 그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다는 이 땅의 종교인들은 그들 자신만이라도 상업주의와 거대주의의 허상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라도.
(1983. 2. 10)

글출처 : 산방한담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