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소비한 기록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당신과 마신 차 한 잔의 영수증, 그리워서 탔던 기차 티켓, 쓸쓸해서 찾아갔던 동물원 입장권, 영수증은 일종의 일기, 마음을 소비한 기록이자 삶의 증명서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에게 변장한 천사가 나타나서 말한다. '사랑이란 영수증과 같아서 3년은 보관하고 그 뒤에는 깨끗하게 버려야 한다'고 영화 <패밀리 맨>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가방 속에서 숱한 영수증이 나온다. 당신과 마신 행복한 차 한 잔의 영수증, 그리움 때문에 탔던 기차 티켓, 쓸쓸해서 찾아갔던 동물원 입장권, 고통받는 포유류의 흔적인 병원비 영수증, 고달픈 삶을 치유하던 두통약을 샀던 영수증, 한 줌 남은 허영 같은 스카프를 산 기록.
삶은 깐깐하고 매정한 검사관처럼 매 순간 정확한 고지서를 보내온다. 받은 영수증도 고스란히, 발행한 영수증도 고스란히 기록한 고지서가 어느 순간 눈앞에 와 있을 때가 있다.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지혜로운 누군가가 말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고. 언젠가 보낸 시간이 발행한 영수증도 우리 삶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마음을 제대로 소비해야겠다 감당하기 힘든 영수증이 발행되지 않도록, 감당할 수 없는 고지서를 받지 않도록.
글출처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샘엔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