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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칼국수 / 아버지의 뒷모습

오작교 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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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서방 칼국수의 메인 메뉴는 쫄깃한 면발에 바지락이 듬뿍 든 바지락칼국수다. 따뜻하게 반기는 사장님의 미소도 한몫한다. 값싸게 한 끼를 해결하는 칼국숫집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맛집이다. 무더위가 꼬리를 사리면서 서늘해진 9월에 바지락칼국숫집을 네 식구가 찾았다. 바지락칼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다. 건져내서 식힌 면을 ‘호로록’ 당기는 돌 지난 손녀 모습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시던 어머니는 막내딸이 사 주는 바지락칼국수가 최고라고 자주 말했다. 우리 집안의 최장수하시는 어머니는 소식가지만, 바지락칼국수와 팥죽은 예외다. 요양원 음식에 물린 어머니께 칼국수는 특별한 외식이다. 칼국숫집에는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항상 더 많은 이유도 알 것 같다. 분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칼국수를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가족이 만족하는 외식 음식은 없다. 세대에 따른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젊은 사위들은 고기류를 선호하고, 딸들은 면류, 아내와 나는 생선을 선호한다. 그 틈새에서 막내아들은 목소리 큰 사람 의견에 편승할 뿐이다. 칼국수로 식사를 마친 식구들이 귀가하던 차 안이었다.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가을이 되면 갑자기 그립고 보고픈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하고 묻는다. “이 가을에 누가 그렇게 그립도록 생각나?” 하고 반문했다. “바지락칼국수를 먹고 나니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뒷좌석에 잠자고 있던 딸내미도 대화가 들렸던 모양이다. “유나야, 할머니 위로해 주어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어리둥절한 어린 손녀의 동그란 눈동자가 후사경으로 보였다. 1960년대 보릿고개 시절이 떠올랐다. 가마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칼국수를 만드셨을 장모의 저고리 입은 모습이다. 바지락칼국수 준비를 위해 고향 바닷가로 나가 바지락을 캐왔을 것이다. 밭에서 자란 말린 밀을 절구통에 빻아 채로 밀가루를 거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반죽을 치댄 밀가루 충치를 떼어내 홍두깨로 떡판에 밀던 어머니 모습도 그려졌다. 널따란 떡판에서 밀어낸 얄팍한 면판은 한 장씩 한 장씩 늘려나갔다. 밀가루에 덮인 도마에서 송송송 면발이 잘라졌다. 아궁이에 지핀 불에 가마솥의 물이 펄펄 끓었다. 끓는 물 속에 해감한 바지락 한 바가지를 부었다. 아궁이에서 피어나온 매캐한 연기와 열기 속에서 고개를 돌리며 실눈을 뜨고 일하셨다. 썰어 둔 칼국수가 불지 않도록 나뭇나뭇 조심스레 띄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도 고통스럽다. 눈물, 땀방울로 얼룩진 저고리에 젖어드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커다란 주걱은 휙휙 돌아갔다.

   전후세대가 즐기던 바지락칼국수는 어린 시절 별미 중 별미였다. 바지락칼국수를 먹던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바지락칼국수는 준비하는 과정의 품만으로도 허기질 일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칼국수 만드셨던 장모를 그리워하는 아내에게는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정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루룩 면발을 집어먹던 유나가 결혼하면 딸도 친정엄마가 그리울 것이다. 칼국수로 인한 집안의 4대 여인들의 인생은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지고 있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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