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샘터

메마른 삶에 한 주걱 맑은 물이 되기를
  •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아버지에 대한 시절별 추억 /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오작교 41

0

0

어린아이 시절.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서 늦게 오셨어. 그래서 일요일에 보는 게 전부였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일 잠결에 얼굴이 따가운 느낌이 들었어. 바로 아버지가 늦게 퇴근하셔서 뽀뽀를 하신 거였어. 잠결에 느꼈지만 낮에 너무 놀아서 피곤하여 일어나지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낮에 힘들게 일하시고 그 늦은 시간에 귀가하셔서 자식의 볼에 뽀뽀하면서 자식이 깨어 일어나서 사온 찐빵을 먹었으면 하고 바라셨을 거야. 지금 내가 귀가했을 때 자고 있는 딸 얼굴에 뽀뽀하면서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아버지의 사랑이 그렇게 깊은 줄 이제야 알았어.

 

초등학교 시절. 
   나름대로 열심히 아버지 구두를 닦았지. 아버지 구두 안에 한 쪽 손을 집어넣고 솔에 구두약을 묻혀 퉤퉤 하고 침을 튀겨가면서 정성을 다했어. 나중에는 마른 천으로 쓱쓱 문질러 광을 내어 보지만 전문적으로 구두 닦는 사람들이 닦은 구두에 비하면 광이 형편없었지. 하지만 아버지는 출근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게 구두를 신으셨어. 현관에서 “아버지, 100원만…” 하고 손을 내밀면 아버지는 기분 좋은 얼굴로 300원쯤 주셨어. 이제 가끔씩 아버지 구두를 닦고 현관 앞에 서 있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로 짓는 기분 좋은 얼굴을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 당시 빛났던 것은 구두도, 100원짜리 동전도 아니었어.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지.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반 친구들과의 팔씨름에서 지고 난 다음에 자존심이 상해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팔씨름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지. 아버지도 흔쾌히 응해 주셨어. 그런데 이게 웬 일인지 거대한 산처럼 여겨지던 아버지를 이겼어. ‘그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 

 

   아버지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대견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이 녀석, 힘이 많이 세졌구나! 이젠 어른이 다 되었어” 하고 말씀하셨어. 한달 후 추석에 온 가족이 다 보는 앞에서 아버지와 또다시 팔씨름을 하여 이기고 난 다음에 무심코 고개를 들자 무안하고 겸연쩍어 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자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마도 ‘이제 자식에게까지 힘이 부칠 정도가 되었구나’ 하는 표정이었지.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아버지와 팔씨름을 해서 져 주고 싶었어. 그래서 아버지는 아직도 젊고 강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 그날 이후로 다시는 아버지께 팔씨름을 하자고 말하지 않았어.

 

군대 제대 후. 
   대학에 다니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지. 아버지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를 성인으로 대접해 주는 것 같아서 우쭐한 기분이 들었어. 성장과정의 이야기와 삶의 어려움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버거운 자리인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주고받으며 생각의 폭을 키웠고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을 느낄 수 있었지. 자식에 대한 깊은 정과 배려를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가 고맙고 자랑스러웠어.

 

결혼 후. 
   아버지가 넘어져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후 퇴원하셨어.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의료보조기구에 의지하게 하여 함께 대중목욕탕에 갔었지. 아버지의 텁수룩한 수염을 면도해 드리고 등도 밀어드렸어. 어릴 적 아버지 등에 업힐 때면 그렇게 넓어보였고 포근하고 든든했는데 그 등이 이제는 왜 그렇게 좁아 보이는지 가슴이 뭉클했어.

 

   아버지의 팔뚝을 만져보았지. 어떤 큰 물건도 들 수 있고, 어떤 큰 나무도 쓰러트릴 것 같은 강하고 단단하던 팔뚝이 축 처져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기며 주먹을 불끈 쥐었어.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아버지는 자신의 팔뚝을 희생해 가면서 가족을 지켜왔겠지. 이젠 내가 아버지를 대신 해서 가족을 지켜드려야지!’ 하고 각오했어. 세상에서 제일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슴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일은 이렇게 오래 걸렸어.

 

글출처 :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윤문원, 씽크파워)
 

공유스크랩
0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81
normal
오작교 25.02.01.10:18 49
normal
오작교 25.02.01.10:12 41
479
normal
오작교 25.01.16.09:02 274
478
file
오작교 25.01.16.08:50 271
477
normal
오작교 25.01.11.18:27 451
476
normal
오작교 25.01.10.19:31 448
475
normal
오작교 25.01.10.19:16 459
474
file
오작교 25.01.03.10:00 1181
473
normal
오작교 24.12.29.07:17 627
472
normal
오작교 24.12.19.10:57 773
471
normal
오작교 24.12.05.10:14 1236
470
normal
오작교 24.12.05.10:06 1227
469
normal
오작교 24.11.29.11:17 1782
468
normal
오작교 24.11.26.20:28 1723
467
normal
오작교 24.11.26.20:19 1811
466
normal
오작교 24.11.26.20:05 1667
465
normal
오작교 24.11.21.09:23 2145
464
normal
오작교 24.11.19.11:25 2003
463
normal
오작교 24.11.19.11:02 1952
462
normal
오작교 24.11.05.13:31 2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