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뒷모습이란 그이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놓여 있는 일기장 같은 것,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호로 가득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는 비밀의 일기장 같은 것.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뒷모습은 비슷비슷할 그것 같지만, 시험지를 열심히 보고 있는 뒷모습은 모두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뒷모습에 알알이 박힌 열여덟 살 청춘의 사연을 헤아리느라 학부모 시험 감독이라는 신분도 잠시 잊었다.
문득 그녀의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이따금 뒷문으로 들어오시던 수학 선생님께 학생들이 항의를 하자 수학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뒷모습에 담긴 순수함이 늘 나를 반성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내가 뒷문으로 들어오는 날은 너희들에게 반성문 쓰는 날이다.”
길에서 낯선 사람의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울컥해질 때가 있다. 어쩌다 가족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 날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이지만 우연히 보게 된 뒷모습에는 그때까지 미처 읽지 못한 마음의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갑각류의 딱딱한 껍질 속에 숨겨진 연약한 속살 같은 것이 무방비로 읽힌다.
뒷모습이란 그의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놓여 있는 일기장 같은 것.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로로 가득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는 비밀의 일기장 같은 것.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절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으나 때로 무방비 상태로 펼쳐진 저 일기장 같은 뒷모습을 얼마나 잘 읽어내고 이해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글 출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쌤앤파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