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식의 함정
‘우리’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우리
2002년 월드컵 때, 직접 경기를 보러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이 가장 놀란 것은, 잘 지어놓은 월드컵 경기장이나 발전한 서울의 거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정말 놀란 것은 머리에는 붉은 띠, 몸에는 붉은 티셔츠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서울 광장에 모였던 거대한 응원 인파, 하나가 되어 열광적으로 대한민국의 승전을 외치던 함성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는 ‘공동체를 향한 강한 열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월드컵 때의 거리 응원,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결혼반지, 돌 반지까지 내어놓던 금 모으기 운동,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때 기름띠를 없애기 위해 연인원 120만여 명이 봉사에 나섰던 일화 등을 보면, 기실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공동체 의식’이 있는 듯하다.
한국인들은 유독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족이나 집을 지칭할 때도 영어는 나의 집(my house), 나의 부모(my parents)라고 하지, 우리 집, 우리 부모, 우리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가족은 물론 직장이나 조직, 학교, 나라 등을 지칭할 때도 항상 ‘우리’다.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나라 등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나의’라는 말 대신 ‘우리’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나’ 개인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인에게 이토록 자연스러운 ‘우리’ 의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남이가?” vs. “우리가 남이여?”
“우리가 남이가?”는 경상도, “우리가 남이여?”는 전라도식 어법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혹은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서로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된 것처럼 대한다. 이것은 지극히 정서적인 문제이기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는 것’도 아닌, ‘느끼는 것’이다. 주는 것 없이 미운, 괜히 싫은, 그런 감정이다. 물론 여기서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대는 이유들과,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싫어한다며 대는 이유들을 시시콜콜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런 이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마치 지역감정에 합리적인 이유라도 있는 양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고, 무슨 정책적 비전을 가졌는지도 모르겠고, 후보가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도,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전혀 다른데도,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정당의 전라도 후보를 찍고,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정당이 경상도 후보를 찍는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이렇게 거저먹는 표가 많으니, 국민을 그렇게 우습게 보는 건지도 모른다.
이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여?”아른 말 속에 투영되는 ‘우리’ 의식의 본질은, “대~한민국!”을 외칠 때의 그 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를까? “대~한민국!”을 외칠 때는 하나가 되었다가, 전라도 - 경상도 얘기가 나올 때는 그들을 쩍쩍 갈라놓은 이 가변적인 ‘우리’의 정체는 뭘까? 짐짓 합리적인 체하다가도 사람을 뽑을 때면, ‘우리 고향’ 출신, ‘우리 학교’ 출신, 심지어 ‘우리 교회’ 출신에게까지 특혜를 주는, 비합리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우리’. 이처럼 ‘우리’ 의식의 본질은 그리 순수하지 않다.
‘우리’ 의식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지나친 ‘우리’ 의식이 ‘우리’와 그 바깥의 ‘남’을 자꾸 가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곱씹어보자. ‘우리’가 ‘남’이냐고 묻고 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우리’ 안에 들어가면 ‘남’이 아닌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 되고, 이 ‘우리’ 안에 못 들어가면 ‘남’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속에서 ’나‘를 일어버리다
미국에 있다 보면 입양아들을 종종 만난다. 학교에서 한국 출신 입양한 대학생들도 만났고, 체육관의 트레이너는 베트남 출신 입양아였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입양아임을 밝혔다.
한국 출신 입양아 대학생은 매일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자신을 포함해 4남매인 형제자매 중에는 또 다른 입양아가 있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에 드는 비용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뒤 자신이 번 돈으로 매년 여름 한국과 중국 등을 방문해 아시아를 경험하고 있다.
체육관의 트레이너는 이미 3명의 친자녀를 둔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됐다. 자랄 때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동네에서 동양인이 자신 혼자뿐이어서 좀 튀기는 했지만, 가족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내가 베트남에 가봤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며, 베트남에 대한 나의 느낌을 알고 싶어 했다. 그는 고향인 베트남에 방문하기 위해 돈을 저축하고 있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한국 출신 입양아는 열 살 때, 베트남 출신 입양아는 일곱 살 때 각각 미국에 입양됐다. 우리나라의 드문 입양 문화에서는 입양이 고려되지도 않을 만큼의 나이였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입양을 자랑스러운 일로 간주한다. 자식을 키우는 즐거움, 가족을 확장하는 데서 오는 따뜻함, 고아들에 대한 관대함이 입양의 주된 이유라고 한다.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이어서 숨길 필요도 없고, 주변 사람들 역시 입양 부모를 존경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대표적인 고아 수출국이었다. 요즘은 해외 입양이 줄었다는데, 그건 정부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매년 해외 입양아의 수를 총원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입양을 원하는 해외의 양부모 후보들이 있고, 입양이 필요한 한국의 아기가 있는데도, 입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해외 입양 희망 부부들이 한국의 아기를 입양하기 위해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제도에서 입양 시기를 놓친 아기들은 고아가 된다. 국내 입양은 여전히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혈연적 관계가 아닌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입양은,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가족의 범위를 혈연관계와 결혼으로만 규정하고, 가족 내부 구성원이 깊은 종속적 유대감을 갖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헌신하는 게 일반화돼 있는 한국 부모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그래서 남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자식의 입양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2011년 2월,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이, 세 살 김 모 군은 아버지의 구타에 매일 새벽이면 몇 시간씩 울로 늘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김 씨는 가출했던 아내가 낳은 김 군이, 자기 핏줄인지 믿을 수 없다며 매일 폭행을 일삼았다. 결국 그 아들은 도가 넘은 구타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내 핏줄이 아니면 가족도 될 수 없고, 내 핏줄인지 아닌지 의심되면(결국 혈연적 가족이 아니라면) 세 살 배기를 때려죽일 수도 있단 말인가? 핏줄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라면 지키고 돌볼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까지 발전하는 이 ‘우리’ 가족만의 견고함. 이 ‘우리’ 가족의 절대성은 ‘우리’와 ‘남’을 가르는 배타주의의 한 원천이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의식이 주는 지나친 유대감은 부작용을 낳지만, 자신에 속한 모든 조직을 ‘우리’로 사고하는 ‘우리’ 의식은 가족을 시작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우리 회사, 우리 모임, 우리 종교, 우리나라가 모두 깊은 유대가을 근저(根柢)에 두고 있다.
왜 그럴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인들은 인생의 가치와 목표 등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조직과 집단, 사회에 의해 결정당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우리’ 가족의 아들이나 딸, 엄마나 아빠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고, 개인적 성취보다 학교와 회사의 명예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며, 개인적 인권의 희생이 민족의 부흥을 우해서라는 명분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한다. 개인이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의 조직원오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의 ‘우리’ 위식은 태안반도 자원봉사의 물결처럼 일부의 아픔을 공동체의 과제로 승화시키고, 월드컵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객관적인 실력 이상을 일구어내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우리’ 의식 속에, 독립적인 개인을 무력화하는 함정이 숨어 있다면, 그래서 시시때때로 ‘우리’ 속에서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만든다면, 이제는 그 ‘우리’ 의식의 맹목성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글출처 :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박에스더, 쌤앤파커스)
2002년 월드컵 때, 직접 경기를 보러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이 가장 놀란 것은, 잘 지어놓은 월드컵 경기장이나 발전한 서울의 거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정말 놀란 것은 머리에는 붉은 띠, 몸에는 붉은 티셔츠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서울 광장에 모였던 거대한 응원 인파, 하나가 되어 열광적으로 대한민국의 승전을 외치던 함성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는 ‘공동체를 향한 강한 열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월드컵 때의 거리 응원,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결혼반지, 돌 반지까지 내어놓던 금 모으기 운동,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때 기름띠를 없애기 위해 연인원 120만여 명이 봉사에 나섰던 일화 등을 보면, 기실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공동체 의식’이 있는 듯하다.
한국인들은 유독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족이나 집을 지칭할 때도 영어는 나의 집(my house), 나의 부모(my parents)라고 하지, 우리 집, 우리 부모, 우리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가족은 물론 직장이나 조직, 학교, 나라 등을 지칭할 때도 항상 ‘우리’다.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나라 등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나의’라는 말 대신 ‘우리’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나’ 개인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인에게 이토록 자연스러운 ‘우리’ 의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남이가?” vs. “우리가 남이여?”
“우리가 남이가?”는 경상도, “우리가 남이여?”는 전라도식 어법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혹은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서로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된 것처럼 대한다. 이것은 지극히 정서적인 문제이기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는 것’도 아닌, ‘느끼는 것’이다. 주는 것 없이 미운, 괜히 싫은, 그런 감정이다. 물론 여기서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대는 이유들과,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싫어한다며 대는 이유들을 시시콜콜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런 이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마치 지역감정에 합리적인 이유라도 있는 양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고, 무슨 정책적 비전을 가졌는지도 모르겠고, 후보가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도,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전혀 다른데도,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정당의 전라도 후보를 찍고,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정당이 경상도 후보를 찍는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이렇게 거저먹는 표가 많으니, 국민을 그렇게 우습게 보는 건지도 모른다.
이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여?”아른 말 속에 투영되는 ‘우리’ 의식의 본질은, “대~한민국!”을 외칠 때의 그 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를까? “대~한민국!”을 외칠 때는 하나가 되었다가, 전라도 - 경상도 얘기가 나올 때는 그들을 쩍쩍 갈라놓은 이 가변적인 ‘우리’의 정체는 뭘까? 짐짓 합리적인 체하다가도 사람을 뽑을 때면, ‘우리 고향’ 출신, ‘우리 학교’ 출신, 심지어 ‘우리 교회’ 출신에게까지 특혜를 주는, 비합리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우리’. 이처럼 ‘우리’ 의식의 본질은 그리 순수하지 않다.
‘우리’ 의식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지나친 ‘우리’ 의식이 ‘우리’와 그 바깥의 ‘남’을 자꾸 가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곱씹어보자. ‘우리’가 ‘남’이냐고 묻고 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우리’ 안에 들어가면 ‘남’이 아닌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 되고, 이 ‘우리’ 안에 못 들어가면 ‘남’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속에서 ’나‘를 일어버리다
미국에 있다 보면 입양아들을 종종 만난다. 학교에서 한국 출신 입양한 대학생들도 만났고, 체육관의 트레이너는 베트남 출신 입양아였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입양아임을 밝혔다.
한국 출신 입양아 대학생은 매일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자신을 포함해 4남매인 형제자매 중에는 또 다른 입양아가 있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에 드는 비용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뒤 자신이 번 돈으로 매년 여름 한국과 중국 등을 방문해 아시아를 경험하고 있다.
체육관의 트레이너는 이미 3명의 친자녀를 둔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됐다. 자랄 때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동네에서 동양인이 자신 혼자뿐이어서 좀 튀기는 했지만, 가족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내가 베트남에 가봤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며, 베트남에 대한 나의 느낌을 알고 싶어 했다. 그는 고향인 베트남에 방문하기 위해 돈을 저축하고 있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한국 출신 입양아는 열 살 때, 베트남 출신 입양아는 일곱 살 때 각각 미국에 입양됐다. 우리나라의 드문 입양 문화에서는 입양이 고려되지도 않을 만큼의 나이였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입양을 자랑스러운 일로 간주한다. 자식을 키우는 즐거움, 가족을 확장하는 데서 오는 따뜻함, 고아들에 대한 관대함이 입양의 주된 이유라고 한다.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이어서 숨길 필요도 없고, 주변 사람들 역시 입양 부모를 존경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대표적인 고아 수출국이었다. 요즘은 해외 입양이 줄었다는데, 그건 정부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매년 해외 입양아의 수를 총원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입양을 원하는 해외의 양부모 후보들이 있고, 입양이 필요한 한국의 아기가 있는데도, 입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해외 입양 희망 부부들이 한국의 아기를 입양하기 위해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제도에서 입양 시기를 놓친 아기들은 고아가 된다. 국내 입양은 여전히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혈연적 관계가 아닌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입양은,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가족의 범위를 혈연관계와 결혼으로만 규정하고, 가족 내부 구성원이 깊은 종속적 유대감을 갖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헌신하는 게 일반화돼 있는 한국 부모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그래서 남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자식의 입양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2011년 2월,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이, 세 살 김 모 군은 아버지의 구타에 매일 새벽이면 몇 시간씩 울로 늘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김 씨는 가출했던 아내가 낳은 김 군이, 자기 핏줄인지 믿을 수 없다며 매일 폭행을 일삼았다. 결국 그 아들은 도가 넘은 구타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내 핏줄이 아니면 가족도 될 수 없고, 내 핏줄인지 아닌지 의심되면(결국 혈연적 가족이 아니라면) 세 살 배기를 때려죽일 수도 있단 말인가? 핏줄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라면 지키고 돌볼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까지 발전하는 이 ‘우리’ 가족만의 견고함. 이 ‘우리’ 가족의 절대성은 ‘우리’와 ‘남’을 가르는 배타주의의 한 원천이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의식이 주는 지나친 유대감은 부작용을 낳지만, 자신에 속한 모든 조직을 ‘우리’로 사고하는 ‘우리’ 의식은 가족을 시작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우리 회사, 우리 모임, 우리 종교, 우리나라가 모두 깊은 유대가을 근저(根柢)에 두고 있다.
왜 그럴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인들은 인생의 가치와 목표 등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조직과 집단, 사회에 의해 결정당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우리’ 가족의 아들이나 딸, 엄마나 아빠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고, 개인적 성취보다 학교와 회사의 명예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며, 개인적 인권의 희생이 민족의 부흥을 우해서라는 명분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한다. 개인이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의 조직원오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의 ‘우리’ 위식은 태안반도 자원봉사의 물결처럼 일부의 아픔을 공동체의 과제로 승화시키고, 월드컵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객관적인 실력 이상을 일구어내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우리’ 의식 속에, 독립적인 개인을 무력화하는 함정이 숨어 있다면, 그래서 시시때때로 ‘우리’ 속에서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만든다면, 이제는 그 ‘우리’ 의식의 맹목성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글출처 :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박에스더,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