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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무 것도/황동규

빈지게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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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무 것도/황동규



오늘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침에 편지 반 장을 부쳤을 뿐이다
나머지 반은 잉크로 지우고
'확인할 수 없음'이라 적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주소 뿐이다
허나 그대 마음에서 편안함 걷히면
그대는 무명씨(無名氏)가 된다
숫자만 남고
가을 느티에 붙어있는
몇 마리 까치가 남고
그대 주소는 비어 버린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에 소금 친 물을 마셨을 뿐이다
우리에 나가
말 무릎 상처를 보살펴 준다
사면에 가을 바람 소리
울타리의 모든 각목(角木)에서 마음 떠나게 하고
채 머뭇대지도 못한 마음도 떠나고
한치 앞이 캄캄해진다
어둠 속에
서서 잠든 말들의 발목이 나타난다

내일은 늦가을 비 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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