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이재무

너구리 한 마리가 절뚝거리며 논길을 걸어가다,
멈칫 나를 보고 선다
내가 걷는 만큼 그도 걷는다
그 평행의 보폭 가운데 외로운 영혼의 고단한 투신이
고여있다.
어디론가 투신하려는 절대의 흔들림
해거름에 그는 일생일대의 큰 싸움을 시작하는 중이다
시골 개들은 이빨을 세우며 무리진다
넘어서지 말아야할 어떠한 경계가 있음을 서로 잘 알고 있다
직감이다
그가 털을 세운다
걸음을 멈추고 적들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나도 안다
지구의 한 켠을 걸어가는 겨울 나그네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나도 안다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