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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바라보면서

오작교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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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물소리 바람소리
    여름철 초저녁을 거의 뜰에서 지냈다. 방 안은 답답하고 불을 켜면 날벌레들이 날아들어 소란을 피우니까, 뜰에 돗자리를 내다 깔고 그 위에서 초저녁의 한 때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방 밖에서 지낸 덕에 산마루에 떠오르는 달을 지켜보면서 어둠을 비추는 월광(月光) 보살의 고요한 음덕에 두 손을 모으곤 했었다. 달 밝은 밤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이태백이 놀던 달이래서가 아니라, 우리들 안에 달빛처럼 고여 있는 은은한 감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맑게 갠 밤이면 무수히 돋아난 별들을 쳐다보면서 광대무변한 우주의 신비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별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것보다는, 아예 누워서 바라보는 편이 훨씬 편하고 아늑하다.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별들을 바라보면 어느새 어릴 적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찍이 익혀 둔 별자리를 찾는 재미도 있다. 북쪽 하늘에 주걱처럼 걸려 있는 북두칠성. 바른쪽으로 주걱 밑지름 다섯 배쯤에 박혀 있는 북극성. 예전부터 항해하는 데 방향의 표적이 되어 온 고마운 별이다.

    여름 밤하늘의 별자리 중에서 가장 또렷하여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화성. 1976년 여름 바이킹 1호가 화성에 착륙하여 보내온 화성 표면의 사진은 마치 자갈밭처럼 보였었는데, 여름 밤하늘에서는 가장 빛나는 별을 이루고 있다.

    은하를 사이한 경우와 직녀. 칠석을 지나면서 그 사이가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다. 직녀는 밝은데 견우는 희미하게 떨고 있다. 견우 뒤에는 독수리가 지키고 있다.

    몇 개의 별자리를 알고 나서 별을 바라보면 밤하늘이 훨씬 정다워진다. 낯선 고장도 친구가 살면 그곳에 정이 가듯이. 그러나 현대인들은 ‘별 볼일이 없기’ 때문에 탤런트나 운동선수의 이름은 그 족보까지 훤히 끼고 있으면서도, 꽃이나 나무, 별들의 이름은 익혀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과 자꾸만 멀어져 간다. 꽃이나 나무 혹은 별들의 이름을 알아두면 우리들의 세계가 그만큼 싱그러워질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조촐한 화단과 숲과 별밭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물과의 교감(交感)을 생각게 하는 시다. 우리들은 수많은 사물을 대하면서도 조용히 지며볼 줄도 모르고, 그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단순한 몸짓으로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무연(無緣)한 타자(他者)가 되고 만다.

    꽃이나 벌의 세계에 교감하려면 뭣보다도 먼저 침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입 벌려 떠들지 말고 묵묵히 지켜보아야 한다. 현대인들의 비극 중 하나는 철저하게 침묵을 잃어버린 것. 그저 떠들어대려고만 하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지를 못한다. 꽃과 별들은 그 자체가 침묵의 세계다. 그러니 침묵의 의미를 모르고서는 그것들이 지닌 속뜰을 넘어다 볼 수 없다.

    신앙이 여무는 것도 침묵을 통해서다. 동서고금의 모든 성인들은 오로지 그 침묵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출가나 재가를 가릴 것 없이 떠들려고만 하지 잠잠히 있을 줄을 모른다.

    침묵을 익히려면 우선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입술로 새어 나오려는 의미 없는 소리가 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꿀꺽꿀꺽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나 듣는 쪽에 덕이 될 수 없는 말은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말에 침묵이 깔리지 않으면 메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끼리 나누는 진정한 대화에는 항상 침묵이 함께 해야 한다. 이 침묵 안에서 마음의 길이 이어진다.

    항상 ‘말썽 많은 불교계’라는 지탄을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이 침묵을 잃어버린 탓이다. 침묵은 벙어리의 답답함이 아니라 모든 이해를 넘어선 근원적인 평화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투명한 사랑은 시끄러운 말보다도 침묵으로 더욱 잘 나타낸다. 서양 사람들처럼 걸핏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로 쏟아버리기보다는,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고 다독거리고 혹은 이만치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을 더 지극하게 여긴 우리네의 풍습이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면서부터 밤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시끄러운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우리들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저 풀벌레와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변광대한 우주공간에서 보면 사람이란 한낱 먼지 같은 존재. 그 먼지기리 서로가 잘났다고 재고 뽐내고 뻐기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먼지로 사라지고 말 그런 우리들인데.

    침묵을 익히라, 속뜰을 침묵으로 채우라.
(84. 9)
글출처 : 물소리 바람소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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