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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라

오작교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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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버리고 떠나기
서울 구의동 동부 터미널에서 영동 지방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내 오두막으로 다시 왔다. 삶의 시작에는 늘 설렘이 따른다. 사람 그림자가 미치지 않은 텅 빈 산골짝을 찾아온 것은, 그 어디에도 매이고 싶지 않은 내 삶의 소망이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면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

   지난해부터 나는 걸치고 있던 치수에 맞지 않는 ‘옷’을 한 꺼풀씩 벗어젖히고 있다. 10여 년 동안 관여해 오던 송광사 수련원 일에서 손을 뗐다. 보조 사상연구원의 일에서도 손을 씻었다. 그리고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에는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승가의 결제 해제 날에도 지난해부터는 어울리지 않고 있다. 영혼에 메아리가 없는 공허한 소리가 법문이나 설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의미 없이 소모되는 시간이 아깝고, 깨어 있으려는 내 의식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묵묵히 참고 견디어온 내 인내력을 보자 창조적이 일에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겨울 안거(安居)의 결제는 남불(南佛) 지중해 연안의 앙티브에 있는 모리스 씨네 별장 ‘산타 루치아’에서 맞았었다. 테라스에 나가 지중해에서 떠오르는 시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나그넷길에서 안거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3개월 후의 해제는 부겐빌레아가 붉게 타오르는 태평양 연안에서 지구의 영원한 나그네로서 조촐히 맞이하였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면 우선 낡은 옷에서 벗어나야 한다. 낡은 옷을 벗어버리지 않고는 새 옷을 입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길과 소통을 가지려면 그 어떤 길에도 매여 있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지난 4월 보름 여름 안거의 결제 날에도 아랫절에 내려가지 않고 임제 선사의 어록을 읽으면서 혼자서 차분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대가 바른 견해를 얻고 싶거든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말라,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이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성자를 만나면 성자를 죽이라. 그래야만 비로소 온갖 얽힘에서 벗어나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하리라.’

   ‘친구들이여, 부처로서 최고가치를 삼지 말라. 내가 보기에는 부처도 한낱 냄새나는 존재요, 보살과 성자는 목에 씌우는 형틀이요, 손발에 채우는 자물쇠, 이 모두 사람을 결박하는 것들이니라.’

   어제 영동 지방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11시 25분 출발, 내 자석은 중간쯤 되는 24번 복도 쪽. 차가 출발하자마자 바로 뒷자리 27, 28번 좌석에서 주고받는 두 여자의 말이, 고단해서 눈을 붙이려던 내 의식을 자꾸만 흩트려 놓았다.

   30 안팎, 혼기를 놓친 듯한 표정들로 보였는데, 주로 한 사람이 지껄여대고 한쪽에서는 이따금 맞장구를 칠 뿐 별로 말이 없었다. 굳이 ‘지껄여대고’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공공장소의 예절을 잊은 채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열어놓은 입을 중간 휴게소에서만 잠시 닫았다가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지 계속 지껄여댔기 때문이다. 우리를 싣고 가는 버스가 영유나 휘발유의 연소 작용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입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쏟아놓은 낱말들은, 하나님, 주님, 예수님, 간구, 십일조, 교회, 간증, 소원, 들어주심… 등등으로 미루어보아 믿음이 깊은 기독교 신자임이 분명했다.

   이 자리에서 미리 밝혀두는 바이지만, 나는 어떤 종파적인 편견을 가지고 이 글을 쓰는 것을 결코 아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여럿이 타고 가는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이웃에 폐를 끼쳐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고, 아무리 좋은 진리의 ‘말쌈’도 쉬어가면서 해야지 줄곧 쏟아놓으면 그건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진실한 믿음과 신앙이 어디 입 끝에 달려 있단 말인가. 그 진리의 말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입 다물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 캐낼 수 있어야 한다. 불교 신자의 경우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공공장소에서 말끝마다 부처님과 보살이 어떻고, 생사니, 해탈이니, 열반이니 기도니, 참선이니 하고 큰소리로 떠들어댄다면 그게 어디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부처님의 처지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었다면 화를 벌컥 내면서 이렇게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야 임마, 그런 입 닥쳐! 내 귀가 따가워 견딜 수 없다. 부처고 보살이고 해탈이고 열반이고 나발이고 더 이상 입으로 지껄이지 마라. 임마, 종교가 누구의 입 끝에 있는 줄 아니? 너 자신의 부처와 보살은 어디 모셔두고 엉뚱한 데서 부처와 보살을 찾고 해탈과 열반을 들먹거려. 할 일 없으면 입 다물고 너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봐라.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 대고 간절한 마음으로 불어봐. 내 이름을 팔지 말고 너 스스로 너를 활짝 드러내도록 하란 말이다.”

   요즘의 고속버스는 그전과 달리 전자매체가 뿜어내는 소음을 별로 없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소리에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이다. 그 대신 턱의 무게가 가벼운 사람들이, 안으로 거두어들일 줄 모르는 속 뜰이 빈약한 사람들이 대신 떠들어대는 경우가 더러 있어 이웃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

   당신의 마음에 어떤 믿음이 움터나면 그것을 가슴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고 하나의 씨앗이 되게 하라. 그 씨앗이 당신의 가슴속 토양에서 싹트게 하여 마침내 커다란 나무로 자라도록 기도하라. 묵묵히 기도하라.

   사람은 누구나 신령스러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지라도 맑고 환한 그 영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그릇된 길에 딴눈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것일지라도 입 벌려 쏟아버리고 나면 빈 들녘처럼 허해질 뿐이다. 어떤 생각을 가슴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싹이 트고 잎이 펼쳐지다가 마침내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앗을 단지 씨앗으로 그칠 뿐,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이룰 때 그 씨앗을 세월을 뛰어넘어 새로운 씨앗으로 거듭난다.

   이 오두막에서는 시냇물 소리를 베고 잘 들었다가 새벽 새소리에 잠에서 일어난다. 휘파람새와 머슴새가 뒤꼍에 날아와 나를 깨운다. 어둠이 사라지고 창호에 밝음이 서서히 번져오는 여명의 시각, 내 의식은 하루 중에서도 가장 맑고 신선하다. 꽃망울로 묶여 있던 의식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이런 순간 나는 삶의 고마운 속 뜰을 거닌다.

   지난해 늦가을 지중해 연안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에 박혀 있던 귀한 메시지가 이 산골의 오두막에까지 울려오고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가 일단 그의 삶을 찾았을 때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알맞은 삶이란 당초부터 없었으니까.’

   우리는 누구나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바란다. 그러나 그 안정과 편안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타성의 늪이요 함정일 수 있다. 그 안정과 편함의 늪에 갇히게 되면 창공으로 드높이 날아올라야 할 날개가 접히고 만다.

   안락한 삶을 뛰어넘어 충만한 삶에 이르고자 한다면 끝없는 탈출과 시작이 있어야 한다. 자연은 사계절을 통해 항상 새롭게 태어난다. 여름 동안 무성했던 잎들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는 것은 가을의 열매를 통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다. 이러한 대사작용이 없다면 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체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개울가에 나가 훨훨 벗어부치고 빨래를 해야겠다. 흐르는 개울물에 빨래하면 때가 잘 지고 힘이 덜 든다. 내 마음속에 낀 때도 말끔히 씻겨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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