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
드디어 전쟁이 일어났다. 한동안 가시 돋친 말들이 오고 가더니 미국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다국적군의 선제공격으로 ‘사막의 폭풍’이 일어났다. 전쟁 억제를 위해 무척 애를 쓰는가 싶더니, 또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전쟁의 구실을 찾기 위해 어지간히 벼르더니 마침내 터지고 만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어느 쪽이 됐건 전쟁에서 승리란 없다. 겉으로는 이기고 진 것 같지만 무자비한 전쟁에서 원천적으로 승리란 있을 수 없다. 일단 전재에 휘말리게 되면 모두가 하나같이 피해자일 뿐. 그런 줄 알면서도 이 지구상에는 전쟁이 끊일 새가 없다.
싸움은 그 어떤 성격의 것을 막론하고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말은 인류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하게 됐다고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거기에는 자기에 몫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욕심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증오심이 깔려 있다. 전쟁의 결과 무엇을 얻고 어떤 것을 잃을 것인지 뻔한데도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국가 간의 전쟁뿐 아니라 개인끼리의 갈등도 그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에서 싹튼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세 가지 독(三毒)이라고도 하고 삼독번뇌라고도 한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 경건하게 알라신에게 기도드리는 모습이 TV 화면에 몇 차례 비치었다. 그런가 하면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은 그의 각료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장면 또한 화면에 나타났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기도의 내용은 물으나 마나 이번 전쟁에서 신이 자기네 편에 서달라는 부탁이요 간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어떤 종교의 성전에는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이 자기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형상대로(혹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신을 창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라면, 그의 피조물인 인간 또한 신처럼 완전한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너나없이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도리어 자신들의 창조주인 신을 농락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의 종류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개념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절대적인 개념인 그 덫에 걸리면 인간은 병들고 만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힌두교도 유태교도 기독교도 회교도 혹은 자이나교도 불교도라고 부르면서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 종교마다 한전같이 사랑을 내세우고 자비를 표방하면서도 종파 간에는 독선과 배타와 질시와 반목 이 코일 새가 없다. 독선적인 종파주의의 종교가 선량한 인간들을 갈가리 갈라놓고 있다.
종교가 생기고 나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종교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일은 소홀히 하면서 종교만을 절대시하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어 사람은 종교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오늘날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 측에 이라크의 도전에 한사코 자제를 요구하는 것도 이른바 회교도들의 단합(이른바 아랍의 단결)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또 국가주의(國家主義)가 맹목적인 종교처럼 떠받들어진다. 국가주의란 제정신 차리고 따져보면 허수아비 같은 것인데 수천만의 세계 시민들은 그 국가주의에 현혹되어 열광한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터에 나가 파괴하고 죽이고 스스로 죽는다. 이런 맹목적인 열기가 뒷전의 정치가들에 의해 활용되고 이용된다.
권력과 특권은 마약이 아니면서도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그 어떤 나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가는 권력과 특권에 취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잡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듯, 권력은 결국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마약이기 때문이다. 권좌에 앉게 되면 자연인으로서의 자기의식을 지니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저지른다.
정치가들은 누구나 마약을 반대하고 퇴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들 자신이 가장 강한 마약을 먹고 가장 심한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전쟁이 그랬듯이 한번 일어난 전쟁은 반드시 그 끝이 있다 전쟁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들뜬 열기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식게 마련이다. 이 또한 우주의 영원한 질서다.
싸움과 갈등을 극복하려면 국가나 개인을 막론하고 탐욕 대신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욕구는 탐욕일 수 없지만, 분수 밖의 욕구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탐욕이다. '우주의 선물'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그 탐욕의 덫에서 빠져나와 벗어날 수 있다. 증오심은 그 자체가 독을 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독이 맞은쪽에 전해지기 전에 이쪽이 그 독의 피해를 먼저 입는다. 증오의 독에서 벗어나려면 이해와 사랑으로 그 화살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이해와 사랑은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맞은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헤아리고 받아들임이다.
어리석음은 곧 어두운 마음이다. 그 어두운 마음에서 온갖 비리와 악덕이 싹튼다. 마음의 바탕은 빛이요, 밝음이요, 평온이며 안락이므로, 이들 마음을 살살이 살피는 일을 통해서 빛과 밝음이 되살아난다. 지금 세계의 곳곳에서는 전쟁의 종식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반전 데모가 일고 있다. 평화를 위한 간절한 그 마음이 국가주의의 열기에 들뜬 망상을 가라앉히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시작이 있는 일은 반드시 그 끝이 있게 마련이니까.
글출처 : 버리고 떠나기(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어느 쪽이 됐건 전쟁에서 승리란 없다. 겉으로는 이기고 진 것 같지만 무자비한 전쟁에서 원천적으로 승리란 있을 수 없다. 일단 전재에 휘말리게 되면 모두가 하나같이 피해자일 뿐. 그런 줄 알면서도 이 지구상에는 전쟁이 끊일 새가 없다.
싸움은 그 어떤 성격의 것을 막론하고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말은 인류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하게 됐다고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거기에는 자기에 몫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욕심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증오심이 깔려 있다. 전쟁의 결과 무엇을 얻고 어떤 것을 잃을 것인지 뻔한데도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국가 간의 전쟁뿐 아니라 개인끼리의 갈등도 그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에서 싹튼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세 가지 독(三毒)이라고도 하고 삼독번뇌라고도 한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 경건하게 알라신에게 기도드리는 모습이 TV 화면에 몇 차례 비치었다. 그런가 하면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은 그의 각료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장면 또한 화면에 나타났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기도의 내용은 물으나 마나 이번 전쟁에서 신이 자기네 편에 서달라는 부탁이요 간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어떤 종교의 성전에는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이 자기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형상대로(혹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신을 창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라면, 그의 피조물인 인간 또한 신처럼 완전한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너나없이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도리어 자신들의 창조주인 신을 농락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의 종류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개념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절대적인 개념인 그 덫에 걸리면 인간은 병들고 만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힌두교도 유태교도 기독교도 회교도 혹은 자이나교도 불교도라고 부르면서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 종교마다 한전같이 사랑을 내세우고 자비를 표방하면서도 종파 간에는 독선과 배타와 질시와 반목 이 코일 새가 없다. 독선적인 종파주의의 종교가 선량한 인간들을 갈가리 갈라놓고 있다.
종교가 생기고 나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종교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일은 소홀히 하면서 종교만을 절대시하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어 사람은 종교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오늘날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 측에 이라크의 도전에 한사코 자제를 요구하는 것도 이른바 회교도들의 단합(이른바 아랍의 단결)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또 국가주의(國家主義)가 맹목적인 종교처럼 떠받들어진다. 국가주의란 제정신 차리고 따져보면 허수아비 같은 것인데 수천만의 세계 시민들은 그 국가주의에 현혹되어 열광한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터에 나가 파괴하고 죽이고 스스로 죽는다. 이런 맹목적인 열기가 뒷전의 정치가들에 의해 활용되고 이용된다.
권력과 특권은 마약이 아니면서도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그 어떤 나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가는 권력과 특권에 취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잡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듯, 권력은 결국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마약이기 때문이다. 권좌에 앉게 되면 자연인으로서의 자기의식을 지니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저지른다.
정치가들은 누구나 마약을 반대하고 퇴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들 자신이 가장 강한 마약을 먹고 가장 심한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전쟁이 그랬듯이 한번 일어난 전쟁은 반드시 그 끝이 있다 전쟁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들뜬 열기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식게 마련이다. 이 또한 우주의 영원한 질서다.
싸움과 갈등을 극복하려면 국가나 개인을 막론하고 탐욕 대신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욕구는 탐욕일 수 없지만, 분수 밖의 욕구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탐욕이다. '우주의 선물'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그 탐욕의 덫에서 빠져나와 벗어날 수 있다. 증오심은 그 자체가 독을 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독이 맞은쪽에 전해지기 전에 이쪽이 그 독의 피해를 먼저 입는다. 증오의 독에서 벗어나려면 이해와 사랑으로 그 화살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이해와 사랑은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맞은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헤아리고 받아들임이다.
어리석음은 곧 어두운 마음이다. 그 어두운 마음에서 온갖 비리와 악덕이 싹튼다. 마음의 바탕은 빛이요, 밝음이요, 평온이며 안락이므로, 이들 마음을 살살이 살피는 일을 통해서 빛과 밝음이 되살아난다. 지금 세계의 곳곳에서는 전쟁의 종식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반전 데모가 일고 있다. 평화를 위한 간절한 그 마음이 국가주의의 열기에 들뜬 망상을 가라앉히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시작이 있는 일은 반드시 그 끝이 있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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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출처 : 버리고 떠나기(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