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오래된 일이지만 방송국에서 피디로 일하던 시절 입니다.
피디란 방송에 출연할 출연자를 늘 찾아내고 또 맞이하며 기다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초대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기다리고 있는데, 현관에서 이분이 어떤 분인지 들여보내도 관찬하겠느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늘 있는 일인데 새삼 전화를 걸어 신원 확인을 하는 게 의아해 초대 손님인데 들어오시게 하지 왜 그러냐고 대꾸했습니다.
경비의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집에서 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뭐하는 누구냐고 신원 확인을 한 것인데 집에서 왔다고 대답했으니 그 엉뚱함에 당황할 만도 하지요.
우리는 늘 집으로부터 나와 어딘가로 향합니다. 일이 있어서,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러, 그도 저도 아니면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늘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오고 또 어딘가로 가면서도 우린 정말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기나 한 걸까요?
혹시 길에서 갑자기 어디로 가느냐고 질문을 던져오며 붙잡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는지요? 갑작스럽게 마주친 그 질문 앞에서 당황하지는 않았습니까? 바쁜 세상이지만 타인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사람도 세상엔 많은가 봅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궁정동이나 삼청동길을 지나 청와대 옆을 지나다 보면 차를 세우고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이 어디를 가건 말건 그게 뭐 그렇게 궁금한 일인지 제복 입은 그들은 길 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번번이 묻곤 합니다.
처음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 지를 왜 이 사람에게 밝혀야 하나'하는 불쾌감도 들었지만 '정말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다소 철학적인 의문이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은 사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철학자도 종교인도 아닌 제복을 입은 경찰이 그렇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오다니 우린 정말 영적인 민족인가 봅니다. 그러나 그들만큼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할 뿐입니다. "집에 갑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이런 대답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 갑니다"
글 출처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김재진 산문집/시와시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