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아버지 /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 자식이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버지가 받았다. 다짜고짜 하는 말, “엄마 바꿔 주세요.” 이번에는 아버지가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자식이 이렇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 바꿔줄게요.”
#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깨는 축 늘어지고 몸은 뻐근하다. 몸은 피곤하고 물씬물씬 땀 냄새를 풍긴다. “아빠 왔다”는 말소리는 마치 허공을 치는 것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반가워하는 반응이 없다. 가정이 외딴 섬처럼 느껴지면서 자신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묻는다.
“아이들은 어디 갔나?”
“방에서 공부할 거예요.”
‘공부, 공부, 공부… 아버지가 들어왔는데도 인사도 할 줄 모르는 그런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섭섭한 마음을 다스리며 아이들 방을 들여다본다.
“공부 열심히 하니?”
달리 할 말이 없다.
“어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짧은 한마디를 하고 계면쩍은 듯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그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래 열심히 해라”고 말한다.
# 퇴근 후 빈 의자로 둘러싸인 식탁. 식탁에 있는 과일 하나를 집어 드는데 “그거 애들 간식이에요”라는 아내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내는 부엌으로 모습을 감춘다. 멀어져 가면서 외치는 아내의 외마디 소리.
“씻고 식사해요.”
‘누가 밥 먹으러 왔나? 힘들게 일하다가 들어왔는데 반겨 주면 어디 덧나나?’ 이런 생각에 마음은 더욱 착잡해진다.
아내가 저녁을 차려주고는 “아이들은 먹었어요” 하고는 드라마를 본다고 TV에 몰두해 버린다. 자기 남편은 본 척도 않고 미남 탤런트만 보는 아내.
‘내가 뭐 때문에 먹어야 하나? 진정 이렇게 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걷잡을 수 없는 수많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 공휴일이다, 집에서 쉬면서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식사하고 싶다. 그런데 아내가 말한다. “휴일에 집에서 있으면 어떻게 해요. 영화도 보고 외식이라도 해야지요.” 집에서 낮잠을 자고 싶고, 공휴일만이라도 출근해서 매일 먹는 외식하지 않고 집에서 식사하고 싶은데 마지못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외출한다.
# 딸이 입사시험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파일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성장 과정을 소개하면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만 있을 뿐 아버지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자기소개서만 언뜻 보면 딸이 성장하는데 아버지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것 같다.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요 뭐.”
회사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 물고 한숨을 내뱉던 동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진정 인생의 전부인가?’
갑자기 역겨운 마음이 몰아친다.
가족들에게 항상 강한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으로 버거운 짐을 힘겹게 지고 비틀거리며 서 있다. 어쩌다 삶이 버거워 펑펑 울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가장이라는 족쇄와 허울좋은 남자라는 이유로 눈물조차 마음대로 흘릴 수 없다.
아이들은 내 손을 필요로 하던 나이를 지나버렸다. 온 가족이 함께 하고 싶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바쁘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꺼낼 수가 없다. 오늘도 강한 척 하며 속없는 너털웃음으로 위장하고 있다.
# 가을이다. 인생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하늘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주 지나온 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회한이 생긴다. 조금만 슬픈 노래를 들어도 자주 눈가를 적시게 된다. 그 동안 앞만 보고 살아온 내 모습이 이제는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자꾸만 주저앉아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 세월의 무상함에 눈물이 고인다.
글출처 : 아버지의 술잔에는 눔물이 절반이다 (윤문원, 씽크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