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합시다] 글 : 시인 / 전윤호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립니다. 시골에 가면 추석에 맞춰 동창회와 운동회를 열기도 합니다. 운동회가 열리면 그 동네는 잔치 분위기가 됩니다. 사람이 모이면 가장 즐거운 일은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면 훨씬 즐거운 자리가 됩니다. 운동회에서는 잘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다 즐겁습니다. 운동회에서 졌다고 분한 마음이 남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운동 회는 축제입니다. 만국기가 걸리고 플래카드가 걸립니다. 즐거운 표정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기꺼이 땅바닥을 뒹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어지럽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 과 경쟁해서 이겨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은 사사건건 싸우고 노사가 싸웁니다. 생각해보면 끔찍 합니다. 이젠 법관들도 싸우고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싸웁니다. 모두들 이기려 합니다. 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합니다. 누구나 이기는 승부는 없습니다. 패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습니 다. 반이 승자면 반은 패자입니다. 아니 어쩌면 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로 분류해야 할지 모릅니다.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패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인간사회의 본질일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쓰는 것도 위험합니다. 전 같으면 반사회적이 라고 블랙리스트에 올랐겠지요. 싸울 때가 있으면 화해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모두 운동회 합시다. 여당과 야당이 모여 줄다리기도 하고 축구도 합시다. 의원 총회를 해서 선수를 뽑고 치어리더도 뽑으면서 즐거운 투표를 하면 정세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하루만이라도 모여서 정당한 시합을 하고 땀이 배인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면 덜 싸우지 않을까요? 법관과 변호사와 검찰이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선생님들이 2인3각으로 달리기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끔 신문에 실린 제 글을 읽고 항의 메일을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메일은 좀 올 듯합니다. 하지만 원래 시인은 몽상가입니다. 그리고 이형기 시인의 말씀을 빌리자면 도시에서 폐허를 꿈꾸는 자이고 항상 실패한 쪽에서는 혁명가이기도 합니다. 하라는 일 은 안 하고 싸우지 말고, 골프장에서 굿샷만 날리지 말고 운동장에 모여 운동회하자는 것입니다.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만들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든다고 합니 다. 하늘이 눈부신 가을입니다. 우리 모여 떡 만들고 김밥 싸서 운동회를 합시다. ※ 출처 : [문화일보 / 전윤호 시인 (poet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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