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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례사

오작교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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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아름다운 마무리

   며칠 전 한 친지가 느닷없이 자기 아들 결혼식에 나더러 주례를 서 달라고 했다. 유감스럽지만 내게는 ‘주례 면허증’이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사양했다. 나는 내 생애에서 단 한 번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주례를 3년 전 6월 어느 날 선 적이 있다. 그날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나는 오늘 일찍이 안 하던 짓을 하게 됐다. 20년 전에 지나가는 말로 대꾸한 말빚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만이 책임을 질 줄 안다.

    오늘 짝을 이루는 두 사람도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세상에 서겠다’고 했으니(청첩장에 박힌 그들의 말이다) 그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 되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무릇 인간관계는 신의와 예절로써 맺어진다.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그 신의와 예절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대, 같은 시간대에서 부부로서 만난 인연을 늘 고맙게 생각하라. 60억 인구이니 30억 대 1의 만남이다.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지 집 안의 가구처럼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

    각자 자기 식대로 살아오던 사람들끼리 한집 안에서 살아가려면 끝없는 인내가 받쳐 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맞은편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이해와 사랑의 길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났을 때라도 말을 함부로 쏟아 버리지 말라. 말은 업이 되고 시가 되어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코 막말을 하지 말라. 둘 사이에 금이 간다. 누가 부부싸움을 칼로 물베기라고 했는가. 싸우고 나면 마음에 금이 간다. 명심하라. 참는 것이 곧 덕이라는 옛말을 잊지 말라.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신속 정확하게 속물이 되고 만다.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없으면 대화가 단절된다. 대화가 끊어지면 맹목적인 열기도 어느덧 식고 차디찬 의무만 남는다.

    삶의 동반자로서 원활한 대화의 지속을 우해, 부모님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숙제를 내주겠다.

    숙제 하나,

    한 달에 산문집 2권과 시집 1권을 밖에서 빌리지 않고 사서 읽는다. 산문집은 시랑 신부가 따로 한 권씩 골라서 바꿔 가며 읽고 시집은 두 사람이 함게 선택해서 하루 한 차례씩 적당한 시간에 번갈아 가며 낭송한다.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는다. 시를 낭송함으로써 항상 풋풋한 가슴을 지닐 수 있다. 사는 일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

    1년이면 36권의 산문집과 시집이 집 안에 들어온다. 이와 같이 해서 쌓인 책들은 이다음 자식들에게 어머니와 하버지의 삶의 자취로, 정신의 유산으로 물려주라, 그 어던 유산보다도 값질 것이다.

    숙제 둘,

    될 수 있는 한 집 안에서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하라. 분에 넘치는 소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이다.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말라, 광고에 속지 말고 충동구매를 극복하라, 가진 것이 많을수록 빼앗기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적게 가지고도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날은 두 사람 다 숙제를 이행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뒤 소식은 알 수 없다. 숙제의 이행 여부는 이다음 삶의 종점에서 그들의 내신성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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