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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먹어댄다

오작교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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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텅 빈 충만

    오전 중에 청년 두 사람이 찾아왔었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그들도 좋은 말씀을 듣고 싶어 왔다고 했다. 나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우선 그 좋은 말씀에서 해방되라고 일러주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얻어들은 좋은 말씀이 얼마나 많은가. 그 좋은 말이 모자라 현재의 삶이 허술하단 말인가. 남의 말에 갇히게 되면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다. 다 큰 사람들이 자신의 소신과 판단대로 살아갈 것이지 어째서 남의 말에 팔려 남의 인생을 대신 살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말로써 설명이 가능한 앎은 참된 앎이 아니다. 말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직접 느끼고 부딪치며 맛을 보아야만 자신의 삶을 이룰 수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모처럼 산에 왔을 테니 빈 마음으로 산을 한 아름 받아가라고 했다. 아무 생각 말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산마루를 바라보고,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새로 움트는 싹들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마음이 열리어 부드러워지면 우리는 어디서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바람과 구름과 새와 나무와 꽃 그리고 이름 없는 풀잎 하나에까지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과 손길과 눈길이 간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늘 질문이 따른다. 그 해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내면에 들어 있다. 밖을 향해서만 해답을 찾으려는 데에 현대 지식인의 끝없는 갈증과 맹점이 있다.

    한 청년이 불쑥 이렇게 물었다.

    “스님은 채식만으로도 건강이 유지됩니까?”

    듣고 보니 요즘 세상에서 한창 관심사가 되어 있는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도 역시 ‘tv교 신자’인 모양이다. 나는 요 근래 이 비슷한 질문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내 식생활과 내가 믿는 건강법을 이야기해야겠다.

    흔히 먹는 음식만으로 건강이 유지되는 것처럼 알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축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평균적으로 말해서 못 먹어서 병드는 경우보다 너무 잘 먹기 때문에 병드는 일이 훨씬 많다. 비만과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은 못 먹어서가 아니고 지나치게 잘 먹는 데서 온 결과 아닌가.

    그전부터 이야기한 바이지만, 동서고금의 양생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가 마음의 안정이다. 마음이 불안정하면 설사 ‘비타민 Z'를 먹는다 할지라도 그게 제대로 흡수되거나 영양이 될 수 없다. 마음의 안정을 이루려면 자신의 분수를 알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을 미워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부사이건 친구지간이건 노사간이건 간에 남을 미워하는 그 자체가 마음에 독을 품는 일이 된다. 마음에 독을 품으면 그 삶이 곧 독이기 때문에 건강은 고사하고 하는 일마다 독으로 얼룩지게 마련이다. 마음의 안정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 인간생활의 원초적인 바탕이다.

    둘째로 우리가 제명대로 살다가 가려면, 자기 나름의 투철한 삶의 질서를 가지고 즐겁고 유쾌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삶의 양식이 다르므로 남의 장단에 놀아나지 말고 자기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자주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살 바에는 즐겁고 유쾌하게 살 것, 즐거움에 넘치는 심장이 가장 좋은 약이다.

    어려운 일에 부딪칠수록 비판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 어려움을 발판 삼아 자신의 새로운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이생사란 끝없는 시도이기 때문에 도전에는 응전으로 극복하면서 거듭거듭 자기형성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전개해 나간다면, 세상은 그렇게 고해만이 아니고 살아갈 만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셋째가 합리적인 식사다. ‘합리적인 식사’란 말에 유의해야 한다. 어떤 음식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체질과 성격과 생활습관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하루아침에 몽땅 한쪽으로만 쏠려버리는 우리네 허약한 생태가 우습기만 하다.

    몸이란 옛사람의 말을 빌 것도 없이 마음의 그림자. 몸에 좋다고 하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닥치는 대로 마구 먹어대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나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너무 무감각한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기름지게 먹거나 많이 먹는 것은 한마디로 미련한 곰들이다. 우리는 요 근래에 들어 좀 살 만하니까 먹을 것 안 먹을 것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이 먹어대는 것 같다. 평생 나를 위해 수고를 하고 있는 위장을 밤낮없이 너무 혹사하고 있다. 수입 쇠고기만으로도 모자라 공업용으로 들여온 쇠뼈다귀까지 먹는다니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그리고 이 지구상의 생물 중에서 너무 과식한 나머지 소화제가지 털어먹는 생물이 우리 인간 말고 어디 또 있단 말인가.

    제명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가려면 검소하게 먹고 과식 과음하지 말아야 한다. 침묵의 성자로 불리는 ‘바바 하리 다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육체와 함께 죽는다. 그러나 영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은 영원히 불멸한다.’

    이제는 내 자신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해야겠다. 나는 30여 년 동안 순수한 채식만으로 살아왔다.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정상적인 건강을 이루고 있다.

    작년 봄 샌프란시스코에 들렀을 때 그곳 메디컬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정윤철 박사의 권유로 난생 처음 종합검진을 받은 일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결과가 어떨지 조금은 불안했었는데 결과는 오케이, 모두가 정상이었다. 단 한 가지 콜레스테롤이 기준치에 약간 미달, 그렇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15년 전부터 이 산중에 들어와 살면서 ‘아침은 부드럽게, 점심은 제대로, 저녁은 가볍게’ 먹고 지낸다. 거듭 말하지만, 먹는 음식만으로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강인한 정신력과 투철한 삶의 질서와 알맞은 활동과 적당한 휴식, 그리고 자연과의 친화가 검소한 음식임에도 내 일상을 별 탈 없이 지켜주고 있다.

    나는 내 육신에 고마워하면서 가끔 연민의 정을 느낄 때도 있다.

(89 . 3. 8)

글출처 : 텅 빈 충만(법정스님 :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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