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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신문

오작교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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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지난겨울에는 눈 고장에도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연일 내리는 폭설에 갇혀서 며칠 동안 딴 세상에서 살아야 했는데, 제작년 겨울부터 그런 눈은 내리지 않는다. 겨울은 물러가고 새봄이 머뭇거리면서 다가서고 있다.

   '물 쓰듯 한다' 는 말이 이제는 생소하게 들릴 만큼, 우리는 지금 물에 대해서 인식을 새롭게, 그리고 절박하게 하기 시작했다. 우리 생활에 한시도 없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토록 소중하고 귀한 물을 우리는 너무 소홀히 여긴 나머지 함부로 다루어 왔던 것이다.

   그야 어디 물뿐인가, 공기와 바람과 흙과 나무와 햇볕 또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게는 생명 그 자체나 다름없는데, 우리 인간들은 산업사회에 휩쓸려 자연을 끝없이 더럽히고 허물면서 홀대해 왔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요즘 같은 기상 이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상 전문가들도 그 원인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지구 환경의 위기가 우리 눈앞에 다가서 있음을 감지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자연현상만은 아닐 듯싶다.

   사람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도 그 자연의 일부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려면 사람들 스스로가 생명의 실상을 올바로 인식하고, 소비를 억제하면서 반자연적인 생활습관을 고쳐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요 근래에 신문 방송의 언론사마다 서로 경쟁이라고 하듯이 환경 문제에 대해 앞 다투어 보도, 계몽하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한 일이다. 공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1970년대부터 정부와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더라면 오늘처럼 심각한 결과는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과 시민은 우리 환경을 오염시킨 주범이면서 동시에 환경 위기에 대응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1970년대 후반에 일어난 자연보호운동이 이름만 요란했지 실패로 끝나고 만 것도, 자연을 파괴한 주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덮어둔 채 대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을 마구 허물고 더럽히면서 파괴한 정부와 기업의 개발은 놓아둔 채 등산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만을 문제삼은 그런 운동이 어떻게 실효를 거둘 수 있었겠는가.

   오늘과 같은 기상 이변은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해 주고 있는 계시처럼 여겨진다. 이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인지 함께 궁리하고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화석 연료의 지나친 소비와 무분별한 과소비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흔히 다루어진다. 물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환경의식의 각성과 개인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미덕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환경 파괴적인 기술의 발달이 오늘과 같은 환경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생산 체계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 시민들의 각성이나 생활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앞을 다투듯이 환경 문제를 보도하고 계몽을 벌이고 있는 언론사에서도 이제는 환경 위기의 주체를 보다 근원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날마다 환경 위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환경을 파괴하는 상품을 광고를 그대로 내보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신문이나 방송사가 광고 수입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기왕 환경운동에 앞장선 언론사라면 환경을 파괴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만만한 가정주부들과 소비자만을 탓하면서 계도하는 것으로는 개선 될 수 없다.

   승가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발밑을 살피라는 것. 신발을 제자리에 바르게 벗어 놓으라는 뜻이지만, 나아가 자신의 현 존재를 살펴보라는 법문이기도 하다.

   요즘 부피가 두터워진 신문의 지면에 글을 쓸 때만다 나는 이 말을 상기한다.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가 홍수를 이루는 지면에 글을 싣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상업주의와 경쟁논리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언론 풍토에 글을 싣는 일이 주저될 때가 있다.

   우리 생활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여기에 따른 정보와 지식도 불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독자와 청취자층이 다양하기 때문에 지면과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늘어난 지면과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 우리들 삶에 그다지 요긴하지도 않은 시시한 저질 정보와 지식이 범람한다면 양식 있는 언론으로 신뢰되기 어렵다. 음식점에서 한 상 그득하게 차려 놓은 음식이 절반도 먹지 않고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신문과 방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 뛰면서 마감 시간에 쫓기고 있는가.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 과다한 광고를 통해 자사의 이익과 함께 소비를 부추기면서 쓰레기와 소음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문용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람에게 물과 맑은공기를 제공해 주는 청정한 숲이 이 지구상에서 무참히 베어진 채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한다. 지면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숲의 피해도 크다.

   이런 현실 앞에서 신문도 크게 자성해야 한다. 하나뿐인 우리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근본적으로 달라져 가야 한다. 이런 현상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신문사마다 벌이고 있는 환경 캠페인도 결국은 속임수가 되고 말 것이다.
 

95. 2. 18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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